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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99

Vol 10. 육지와 바다, 민물의 3중주 충청남도

땅과 민물, 바다의 3중주, 충청남도 ⑧

향토 미식 로드 _ 공주 국밥

2023/11/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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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사골과 대파의 만남 공주 국밥

뚝배기 가득 담긴 뜨끈한 국물과 쫄깃한 고기 고명. 한 숟가락 크게 떠서 입에 넣으면 영혼까지 온기로 덥혀주는 국밥. 타지에서 힘들고 고달플 때 한 번쯤은 생각나는 ‘한국인의 솔 푸드’임이 틀림없다.

전국 곳곳에는 그 지역만의 특색이 있는 국밥이 있다. 그중에서도 공주 국밥은 쇠고기 육수와 대파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시원한 맛이 특징. 한우 사골을 24시간 이상 푹 곤 국물에 대파의 뿌리 부분을 한가득 넣고 다시 끓인다. 대파는 국물에 달짝지근한 감칠맛을 더해주는 일등공신. 이 육수에 삶은 양짓살과 우둔살을 넣고 파를 송송 썰어 고명으로 얹어주면 완성이다. 밥과 국은 따로 나오는데, 대구의 따로국밥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진한 사골국물에 소고기와 파, 콩나물, 선지를 넣는 대구식 따로국밥은 칼칼한 맛이 강한 반면, 공주 국밥은 담백하면서도 깔끔하다.

한우 사골을 24시간 이상 푹 곤 국물에 
대파의 뿌리 부분을 한가득 넣고 다시 끓인다
대파는 국물에 달짝지근한 감칠맛을 더해주는 일등공신

공주 국밥의 시작은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공주 제민천의 대통교 동쪽의 천변은 ‘국밥 거리’롤 통했다. 제민천에는 이른 새벽부터 각지에서 모여든 나무꾼들이 솔가지며 장작을 파는 나무장이 섰다. 산림감시원의 눈을 피해 이른 아침에 열리곤 했는데, 장사를 마친 나무꾼들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찾던 곳이 바로 국밥 거리였다. 이 거리를 지날 때면 구수한 국밥 냄새가 진동해 침을 삼키지 않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였다. 당시 국밥 한 그릇 값은 막걸리 한 잔을 곁들여 20전 정도.
세월이 흐르면서 국밥 거리는 점차 사라졌다. 공주 국밥의 명맥이 다시 이어진 것은 6·25전쟁 즈음. 어린 시절 제민천 변의 국밥 거리를 보면서 자란 고봉덕 씨는 전쟁이 터지기 전 공주산성시장에서 간판 없이 국밥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다 석 달 후 6·25가 터졌고 전쟁이 끝난 후에 ‘이학식당’이라는 간판을 걸고 다시 장사를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일이다. 이후 이학식당은 문을 닫지 않고 꾸준히 영업을 해왔다. 지금은 금강공원 주변으로 자리를 옮겨 셋째 며느리가 <새이학가든>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다.

제민천에는 이른 새벽부터 나무꾼들이 장작을 파는 나무장이 섰다
장사를 마친 나무꾼들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찾던 곳이 바로 국밥 거리
그 거리를 지날 때면 구수한 국밥 냄새가 진동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재밌는 사실은 국밥을 먹을 때 없으면 서운한 깍두기도 공주의 향토 음식이라는 것. 1940년 홍선표가 지은 ‘조선요리학’에 따르면 깍두기는 조선시대 숙선옹주가 처음 만들었다. 숙선옹주는 정조의 딸이자 순조의 여동생. 숙선옹주는 공주의 알밤 깎은 모양에 착안해 무를 작고 네모지게 썬 깍두기를 만들어 순조에게 올렸는데, 그 맛이 뛰어나 크게 칭찬을 받았다. 이후 한 정승이 공주에 내려와 깍두기 만드는 법을 민간에 퍼뜨리며 ‘공주 깍두기’라 부르게 됐다는 설이 있다.

Where to eat?
새이학가든
A 충청남도 공주시 금강공원길 15-2
T 041-855-7080
H 10:30-21:30

에디터 정민아  사진 강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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