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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9. 남해 품은 食의 바다, 경상남도
남해 품은 食의 바다, 경상남도 ②
향토 미식 로드 _ 빼떼기죽

말린 고구마의 변신은 무죄! 빼떼기죽
투박하지만 귀여운 이름이 통영스럽다. 얇게 썰어 바짝 말린 고구마를 사투리로 ‘빼떼기’라 부르는데, 전분(녹말)이 하얗게 빠져나와 흡사 뼈다귀처럼 보여 ‘빼떼기’라 이름 붙여졌다. 물 빠짐이 좋은 경사지에 풍부한 일조량과 청정 남해의 해풍까지 맞고 자란 통영 고구마는 달기로 유명하다. 특히 ‘욕지도 타박 고구마’는 당도가 월등히 높고, 삶으면 살이 밤처럼 포실해져 고구마의 우두머리로 불릴 만하다. 대도시에서 주문이 쇄도할 만큼 한결같은 인기를 자랑하는데, 올해는 조기 재배 기술로 가을에 출하하던 고구마를 두 달이나 빨리 수확해 한여름에도 판로를 열었다. 이리도 맛이 훌륭한 고구마를 말려서 죽을 끓이면 단맛이 훨씬 더 좋아질 수밖에.


당시 가정집에서 빼떼기죽을 끓일 땐 고구마를 껍질째 써
팥죽을 닮은 어두운 자줏빛을 띠었는데,
최근 식당에서 내는 빼떼기죽은
대개 껍질을 벗긴 고구마를 써 호박죽 같은 누런 빛깔을 낸다.
빼떼기죽은 통영 사람들의 애정과 추억이 서린 솔 푸드로, 요즘은 별미로 찾지만 과거엔 춘궁기 시절 허기를 채워준 ‘든든한’ 주식이었다. 바닷마을인지라 추위가 찾아오면 곡식이 똑 떨어지기 일쑤. 삶아두면 쉬이 상하는 고구마를 오래 두고 먹을 수 없어 ‘건조’를 택한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당시 가정집에서 빼떼기죽을 끓일 땐 고구마를 껍질째 써 팥죽을 닮은 어두운 자줏빛을 띠었는데, 최근 식당에서 내는 빼떼기죽은 대개 껍질을 벗긴 고구마를 써 호박죽 같은 누런 빛깔을 낸다. 함께 들어가는 부재료는 조와 강낭콩, 팥 등 잡곡류. 여러 곡식을 섞어 포만감을 키운 것도 지난한 배고픔의 시간을 드러낸다.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을 실천하는 농가형 식당.
빼떼기의 50%는 욕지도 고구마를,
나머지 50%는 집 앞 텃밭(통영시 산양면)에서 직접 키운 고구마를 쓴다.
통영 중앙시장 안팎으로 모락모락 김을 피우며 존재감을 뽐내는 전통 죽집들. 그중 <통영 빼떼기죽>은 할머니와 어머니의 비법을 그대로 이어받아 원조에 가까운 맛을 선보인다. 그간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유명인사와 맛 칼럼니스트들이 숱하게 다녀가 공인 인증 맛집으로도 등극했다.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을 실천하는 농가형 식당. 빼떼기의 50%는 욕지도 고구마를, 나머지 50%는 집 앞 텃밭(통영시 산양면)에서 직접 키운 고구마를 쓴다. 빼떼기죽 역시 오랜 노고 끝에 완성되는 경상남도식 슬로푸드. 일단 고구마를 깨끗이 씻어 말리는 단계에서 시작한다. 이때 <통영 빼떼기죽>만의 특징이라면 욕지도 고구마는 껍질을 벗겨 쓰고, 집 고구마는 껍질째 쓰는 것. 식감과 맛의 균형을 위해 50대 50으로 황금비율을 맞췄다.


빼떼기죽 역시 오랜 노고 끝에 완성되는 경상남도식 슬로푸드.
약한 불에서 죽을 조리며 깊은 풍미를 끌어 모으는데,
계속 조릴수록 고소하고 달달해져
불 앞에서 오래 버틸수록 궁극의 진미에 도달할 수 있다.
오가는 길고양이 한 마리 없는 어두컴컴한 새벽 3시. 하루치 빼떼기죽을 가득 채운 솥이 서둘러 불 위에 오른다. 고구마 씻은 검은 물로 밥물을 잡고, 깨끗이 씻은 빼떼기를 압력밥솥에 넣어 센 불에서 20~30분간 삶는 게 1단계. 불을 끄고 나서 어느 정도 압이 빠지면 찬물을 조금 부어 약간 퍼지게 한다. 다음으로 조와 강낭콩, 설탕을 넣는데, 느릿느릿 계속 풀어지는 전분 때문에 쉬이 탈 수 있어 쉴 새 없이 저어줘야 한다. 이때 설탕이 들어가는 건 단맛을 내기보단 말린 고구마 특유의 쿰쿰한 냄새를 잡기 위한 것. 감칠맛은 올라가고 잡내는 감쪽같이 사라진다. 모터를 단 듯 결코 멈추지 않는 주인장의 손놀림. 20~30분간 다시 약한 불에서 죽을 조리며 깊은 풍미를 끌어 모으는데, 계속 조릴수록 고소하고 달달해져 불 앞에서 오래 버틸수록 궁극의 진미에 도달할 수 있다.

여운이 남을 만큼 은근하게 달지만
느끼하게 달지 않아 매력적.
경상도 음식 특유의 꾸밈없는 담백함이 팥죽과 호박죽 이상이다.
한가득 퍼 올린 빼떼기죽의 차진 온기. 도톰한 건더기가 자주 씹히는 호박죽 느낌인데, 고구마인지 밤인지 호박인지 알쏭달쏭하다. 여운이 남을 만큼 은근하게 달지만 느끼하게 달지 않아 매력적. 경상도 음식 특유의 꾸밈없는 담백함이 팥죽과 호박죽 이상이다. 사이사이 리드미컬하게 씹히는 조와 강낭콩은 잔잔한 선율에 더해진 감각적인 변주. 실온에 두고 식은 죽으로 먹어도 또 다른 별미다.

Where to Eat?
>> 통영 빼떼기죽
A 경상남도 통영시 통영해안로 325-3
T 055-646-3443
H 08:30-19:30(단, 재료 소진 시 마감)
에디터 전채련 사진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