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전하는 온라인 매거진
Vol 6. 게미 있고 곰삭은 멋, 남도 풍류
게미 있고 곰삭은 멋, 남도 풍류 ①
향토 미식 로드 _ 광양 닭 숯불구이
충청남도, 경상남도, 전라남도. 한데 왜 전라남도가 '남도’를 대표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피 끓는 정의와 시련이 서린 시대의 그림자.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사가 실종된 그 자리엔 물과 바람, 햇살이 풍요를 노래했다. 굽이굽이 격변을 겪은 지리산이 내어준 청량한 바람. 평온으로 다독이는 섬진강은 만물을 내어주었다. 비옥한 평야와 기름진 개펄, 짙푸른 바다와 산이 품은 소담스런 식재료. 날 때부터 남도는 참 가진 게 많았다.
튀어오를 듯 쫄깃한 꼬막과 눅진한 짠내의 서대회무침, 새큼한 매실 향과 그윽하게 짙어가는 광양의 숯 향. 남도의 밥상에 취해 벌렁 차밭에 드러눕자 흐릿해진 감성마저 감동으로 둔갑했다. 인심 후한 손맛에 더해진 느림과 삭힘의 미학. 들숨마다 스민 젓갈 향에 게미(전라도 사투리로 전라도 특유의 깊고 진한 감칠맛) 도는 광주의 5味가 잡혔다. 옹기종기 모인 먹자골목의 흥겨운 가락. 덩실덩실 땅이 춤추자 남도는 그대로 전통이 되었다.
숯불과 발효로 퍼지는 광양의 향
매일같이 푸른 심상이 떠오르는 섬진강 길. 지리산과 연봉을 이룬 백운산 자락이 수면 위로 맺히면 숨이 한 템포 느려진다. 매화 꽃비가 흐르는 잔상에 초록빛 매실이 여무는 담채화. 물기 어린 바람이 파고들 때 맑은 재첩국 생각이 간절해진다. 왁자지껄 한자리에 모여 벌이는 숯불 잔치. 달군 석쇠에 소고기와 닭고기, 장어를 차례로 올리면 자욱해진 연기가 식욕을 자극한다. 천연 발효 여름떡, 기정떡으로 이어진 미식 로드. 광양 향토색을 가미한 손맛을 따라가봤다.
도톰한 살코기에 촘촘히 스민 숯 향 광양 닭 숯불구이
예로부터 광양은 육해공 식재료를 참숯에 구워 불 맛을 살려 먹었다. 우리나라 3대 대표 불고기 ‘광양 불고기’도 숯불로 풍미를 낸 요리. 마을에선 석쇠나 화로도 없이 세숫대야에 장작 태운 숯을 대충 담아 고추장으로 양념한 닭을 구워 먹곤 했다. 동네방네 연기가 나고 냄새를 풍기는 일도 다반사. 가족이 다 같이 모일 때면 둥글게 둘러앉아 소소한 바비큐 파티를 열었다. 섬진강과 남해가 합류하는 광양 초남에선 ‘광양 초남 장어구이’가 인기를 끌었다. 참숯을 널리 쓴 광양의 식문화는 지리적 특성 때문. 북부에 자리한 백운산은 참나무 숲으로 뒤덮여 골짜기마다 참숯을 굽는 가마가 많았다. 일주일간 섭씨 1500℃ 이상으로 불을 때 숯을 만드는데, 강력한 화력은 물론 향의 깊이도 차원이 달랐다. 숯 향을 제대로 맛보려면 고기구이가 제격. 불길이 오랫동안 버텨 고기의 겉은 바삭하게, 속은 촉촉하게 익혀준다. 고기 결마다 밴 검은 나무 향은 감칠맛의 최고봉. 심지어 입안에 단맛을 돌게 한다.
피서철이면 백운산 4대 계곡에 인파가 모여들었는데,
자연스레 주변으로 산장형 음식점이 들어섰다.
이때 등장한 메뉴가 닭 숯불구이.
등산로 입구에 흔한 닭 백숙 집과도 닮았다.
향토 숯불 요리로 현지에서 가장 대중적인 건 ‘닭 숯불구이’. 서울을 비롯해 타지 사람에겐 꽤 낯선 편이다. 시작은 나들이 덕분이었다. 피서철이면 백운산 4대 계곡에 인파가 모여들었는데, 자연스레 주변으로 산장형 음식점이 들어섰다. 이때 등장한 메뉴가 닭 숯불구이. 등산로 입구에 흔한 닭 백숙 집과도 닮았다. 또 매년 3월은 고로쇠 약수철. 사람이 몰릴 때면 토종닭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하지만 아쉽게도 산장은 특정 시즌에만 오픈, 먹고 싶을 때마다 찾아갈 순 없었다.
지난 20년간 산장을 지킨 <옥룡골> 주인장은 시내 한복판에 제2의 옥룡골을 열었다. 시즌제에서 벗어나 ‘1년 내내’ 닭 숯불구이를 선보이는 것이 특징. 단 4분, 한 치 오차 없이 끝난 닭 해체 작업에서 장인의 내공이 드러난다. 0.5cm 두께로 포를 뜬 닭살의 탄력적인 식감. 소나 돼지처럼 갈빗대를 살린 고깃점도 더러 보인다. 양념은 까맣고 진한 1급 간장을, 토종닭은 최상품 중 15호나 16호를 골라 사용한다.
닭 숯불구이를 맛있게 먹기 위한 팁이라면 굽는 내내
고기를 끊임없이 뒤집을 것.
양념에 버무리면 육즙이 날아가지 않는 대신 쉽게 탈 수 있다.
특히 놀라운 건 양념용 홈메이드 간장 소스. 특급 간장에 갖가지 약초(황기, 엄나무, 헛개나무 등)와 과일(사과, 배, 대추 등), 파뿌리, 멸치 육수, 매실 엑기스 등을 넣고 약 2시간 끓이는데, 인공적인 짠맛과 단맛을 덜어내 변화무쌍한 풍미를 자아낸다. 고기를 미리 재워놓는 법 없이 주문 즉시 양념하는 게 원칙. 촤~촤~ 지글지글 불타는 화로 위 석쇠가 내는 경쾌한 소리는 숯불구이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팁이라면 굽는 내내 고기를 끊임없이 뒤집을 것. 양념에 버무리면 육즙이 날아가지 않는 대신 쉽게 탈 수 있다.
보들보들 질기지 않은 육질이 숯 향을 머금어
소갈비 같기도, 돼지갈비 같기도 해 씹는 내내 재미가 있다.
잘 익은 닭살 한 점을 베어 물자 혼돈의 도가니. 보들보들 질기지 않은 육질이 숯 향을 머금어 소갈비 같기도, 돼지갈비 같기도 해 씹는 내내 재미가 있다. 쌈 대신 곁들이는 상추 겉절이는 환상의 짝꿍. 고기의 기름진 끝 맛을 입가심하듯 상큼하게 잡아준다. 남도다운 푸짐한 한상차림은 감동의 물결. 청장으로 삼삼하게 무친 나물 반찬과 잼피 겉절이, 묵은지는 <옥룡골>의 보물과도 같다. 그중 잼피(초피나무 열매, 추어탕이나 민물매운탕에 들어가는 산초보다 진한 향을 낸다)가 들어간 겉절이는 동남아를 품은 맛. 탄산처럼 특유의 찌릿한 향이 코끝에 감돌아 중독성 있게 끌린다.
Where to Eat?
옥룡골 닭 숯불구이
A 전라남도 광양시 광양읍 칠성로 71
T 061-762-3876H 11:00~22:00(첫째·셋째 화요일 휴무)
Tip 1. 천하제일 마로화적(마로는 광양의 옛 지명), ‘광양 불고기’
광양의 향토 요리로 얇게 저민 소고기를 갖은 양념해 석쇠에 올려 구워 먹는다. 고기를 양념에 버무리는 일은 주문 즉시 이뤄지는 게 정석. 샤부샤부용 고기처럼 얇아 미리 재워두면 육즙이 많이 빠져나간다. 볶아내듯 휘휘 굽지 말고 한 점, 한 점 공들여 구울 것. 고기가 구워지면서 육질 사이로 양념이 먹음직스럽게 배어들어, 익을수록 숯불 향이 절정에 달한다. 광양 불고기에 얽힌 유래는 다양하다. 그중 가장 유력한 설은 조선 시대 조정에서 벼슬을 하다 광양으로 귀양 온 선비가 있었는데, 이 선비가 성 밖에 사는 천민 아이들을 가르쳤다. 배움에 대한 보은으로 한 아이의 부모가 연한 암소를 잡아 참숯을 피우고 석쇠에 고기를 구워 대접했는데, 귀양에서 풀려난 선비가 한양으로 돌아가 그 맛을 잊지 못했다고. 이렇듯 불고기로 이름난 광양엔 ‘광양불고기 특화거리(전라남도 광양시 광양읍 칠성리 일대)’가 조성돼 있다.
Where to Eat?
시내식당
A 전라남도 광양시 광양읍 칠성리 964-1T 061-763-0360
H 10:00~22:00
Where to Eat?
삼대 광양 불고기집
A 전라남도 광양시 광양읍 칠성리 959-11T 061-763-9250H 11:30~20:50
에디터 전채련 사진 윤동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