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전하는 온라인 매거진
Vol 62. 양념이라는 깊고도 넓은 세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한식 양념
양념 그리고 한식

음식을 만들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양념이다. 소금과 간장, 된장, 젓갈, 멸치, 참기름 등 양념이 없었다면 우리 한식의 맛은 얼마나 무미건조했을까. 이제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 식에 입체적인 맛을 더해주는 양념에 대해 살펴본다.
글 노윤영(편집실) 참고자료 <K Food: 한식의 비밀- 1. 한국의 특별한 맛>(디자인하우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홈페이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양념이라는 세계

인간은 자연에서 식물과 동물 등의 음식 재료를 채취해 섭취하며 생존했다. 그 덕분에 문명은 발전을 거듭했고 이 세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연의 음식 재료 중에는 그대로 섭취하기에는 곤란한 경우가 많았다. 그리하여 인간은 요리를 통해 음식의 효능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맛까지 챙겼다. 요리 과정에서 새롭고도 다채로운 맛을 선사한 것이 바로 ‘양념’이라는 세계다. 양념은 음식의 맛을 돋우기 위해 사용하는, 향신료를 포함한 모든 재료를 뜻한다. 음식을 만들 때 재료가 가지고 있는 좋은 향기와 맛은 그대로 살리되, 좋지 않은 맛은 상쇄시키기 위해 여러 재료를 ‘양념’으로 활용했다. 누린내와 비린내를 제거하는 데 필수적으로 쓰이며 특히 소금과 후추는 세계사를 바꿨다고 기록될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한식에 양념으로 사용되는 재료는 아주 많지만, 과거보다는 줄었다. 1924년 일제강점기에 재야 지식인 이용기가 펴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을 보면 ‘지금은 양념 쓰는 것이 전보다 줄어졌나니’라고 기록해 시대 흐름에 따라 양념의 종류가 감소됐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조리과정의 간소화, 육류가공 및 저장방법의 개선 등이 그 이유로 손꼽힌다. 한식에 전통적으로 사용되는 양념은 맛이나 상황에 따라 구분될 수 있으며, 현재 주로 사용되는 양념은 다음과 같다.


한식 양념의 다양한 종류
바닷물을 증발시켜 얻은 결정체인 소금은 장아찌나 장을 담글 때 쓰이며 종류에 따라 용도가 다르다. 김치나 생선을 절일 때는 천일염, 일반적으로 간을 맞출 때는 꽃소금, 김을 구울 때는 죽염이나 구운 소금이 사용되는 식이다. 간장은 상고시대부터 제조돼 한식의 기본이 돼온 양념으로 콩을 발효해 만들었으며, 음식에 짠맛을 더해준다. 메주를 소금물에 담갔다가 국물을 걸러 간장으로 쓰는데 담근 햇수에 따라 간장의 종류가 나뉜다. 1~2년 된 맑은 장은 청장 혹은 국간장이라 부르며 국을 끓이거나 나물을 무칠 때 쓰고 담근 햇수가 오래돼 색이 진하고 단맛과 감칠맛이 많은 진간장은 조림과 볶음, 구이, 장아찌 등에 사용된다. 된장은 간장과 함께 상고시대부터 이용된 전통 양념 중 하나로 국이나 찌개의 간을 맞출 때, 쌈장을 만들거나 나물을 무칠 때 사용된다. 소금물을 아주 적게 잡아 된장 위주로 쓰게 만든 것은 막장이라 부른다. 고추장은 메줏가루에 쌀이나 보리를 섞고 고춧가루를 넣어 맵게 담근 장으로 조선 중엽부터 만들어졌다. 생선의 비린내를 없애주는 장점이 있어 생선찌개나 조림에 많이 쓰인다.
식초는 곡물이나 과일을 초산균을 통해 발효시킨 것으로 신맛을 통해 식욕을 돋운다. 음식에 사용하면 방부제의 역할을 하며 생선의 비린내를 제거하고 생선의 살을 단단하게 해준다. 흑초는 양조 식초 중 하나로 쌀과 누룩, 자연수 등을 이용해 만드는데 필수 아미노산과 같은 영양소가 풍부해 식초계의 보석으로 불린다.
설탕과 조청, 물엿 등은 한식에 단맛을 더하는 양념이다. 참깨는 볶아서 통깨로 쓰거나 곱게 빻아 깨소금으로 쓴다. 들깨는 볶아서 그대로 쓰거나 갈아서 순댓국, 수제비, 찜, 찌개, 나물 등에 넣는데 음식 맛이 고소해진다. 참기름과 들기름 등의 기름도 대표적인 양념 중 하나다. 참깨를 볶아 착유한 참기름은 고소한 맛과 향이 강하며, 매끄럽고 부드러운 질감을 준다. 들기름은 독특한 향이 있어 주로 산나물을 무칠 때나 볶을 때 쓰인다. 매운맛을 내는 것은 고추장 이외에 고춧가루·후춧가루·겨자즙 등이 있다. 이들은 생선이나 고기의 누린내를 가시게 하는 동시에 독특한 향미로 식욕을 돋운다. 생강을 다지거나 즙을 내면 돼지고기의 누린내를 없애주므로 돼지고기 요리에 쓰면 좋다. 양념은 많이 넣는 것보다 재료와 조리법에 따라 적절히 배합하여 적당량 넣는 것이 더 음식의 맛을 살릴 수 있다. 그 밖에도 잣가루, 파, 마늘, 생강 등 많은 재료가 한식 양념으로 쓰인다.

맛과 풍미를 돋우는 양념
해외 사람들은 한식 하면 흔히 맵다고 느낀다. 많은 한식에서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기반으로 하는 데다 마늘과 파, 생강 등 매운맛이 나는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한식 양념은 음식을 매우 조화롭게 만든다. 한식 양념인 고추와 된장 등은 모두 다른 재료와 어우러져 숙성된 조화의 맛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맵지만 다른 서양의 음식보다 덜 자극적으로 느껴진다.
18세기 조선 대표 지식인 정약용이 쓴 사전 <아언각비>를 보면 양념을 “생강, 마늘 같은 매운 향신료를 찧어 맛을 미혹시키는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이는 옛날 양념 역시 매운맛이었음을 뜻한다. 하지만 당시 양념은 양반과 부자가 아니면 먹기 힘들었다. 생강, 후추 등 당시 양념들은 부의 상징이자 ‘약’으로 불렸다. <아언각비>를 보면 각종 매운맛 재료로 만든 양념을 우리나라에서는 ‘약렴’이라 부른다고 설명하는데, 여기에는 양념이 몸에 좋은 약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 실제 과거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양념을 약으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당시 수입에 의존해 비쌌던 후추의 자리를 본래 식용이 아니었던 고추가 대체하면서 양념은 점차 대중화됐고, 서민들도 접할 기회가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고춧가루 중심의 한식 양념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하지만 매운맛은 일부분일 뿐이다. 한식 양념의 세계는 넓고도 깊다. 짠맛과 단맛, 신맛과 매운맛, 감칠맛을 내는 것은 물론 풍미를 더하고, 비린내까지 제거해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양념은 얼핏 본 재료의 맛을 해치는 요소라 인식하기 쉽다. 하지만 한식에서 양념은 본 재료의 가치는 유지하되 맛과 풍미가 인간에게 좀 더 적합하도록 발전해왔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