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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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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60. 구워 먹는 즐거움을 맛보다

음식을 익히는 가장 오래된 조리법, 구이

불 그리고 한식

2023/01/30 16: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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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인류의 생활양식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았다. 화산의 폭발이나 벼락으로 인해 불이 나면 두려움이 앞섰을 테지만, 우리 선조들은 점차 불의 놀라운 쓸모를 깨달았다. 따뜻한 불로 추위를 이겨냈고, 불을 밝혀 어둠과 사나운 짐승을 물리칠 수 있었다. 불은 식문화에서도 일대 변혁을 일으켰다. 음식을 '익혀' 먹게 된 것이다.

서동철(편집실) 참고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빅히스토리(김서형), 음식으로 읽는 한국 생활사(윤덕노), 불고기 한국 고기구이의 문화사(이규진·조미숙)

인류, 불로 익힌 음식을 맛보다

우연히 불에 그을린 고기를 맛본 우리 선조들은 눈이 번쩍 떠졌을 것이다. 날것으로 먹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러운 식감에 맛과 향까지 좋았다. 그렇게 불씨를 가져와 불을 피우고 고기를 비롯한 음식을 익혀 먹기 시작했다. 음식을 익히는 가장 오래된 조리법인 ‘구이’가 탄생한 것이다.

음식을 익혀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맛에 국한된 영역이 아니라 인류의 발달과 깊게 연관돼 있다. 음식을 불로 익혀 먹음(화식)으로써 인류는 병균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동시에 더 많은 육식을 할 수 있게 됐다. 소화가 잘되니 영양분의 섭취가 늘어났고, 이에 따라 뇌용량이 획기적으로 증가하며 인간은 보다 고차원적인 진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족보행, 도구의 사용 등을 인간의 특징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일부 영장류들도 두 발로 걷고, 간단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다. 하지만 화식을 하는 영장류는 인류가 유일하다. 과학자들이 화식이야말로 인간과 다른 영장류들을 구분하는 중요한 특징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소중한 도구이자 신앙의 대상

우리 조상들은 불을 매우 소중하게 여겼으며 더 나아가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불씨는 절 때 꺼트려서는 안 되는 집안의 보물이었으며,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대대로 물려주는 소중한 존재였다. 종가에서는 그 집의 맏아들이 분가할 때 이사하는 새집에 불씨 화로를 들고 먼저 들어가는 것이 관례였다. 요즘에는 드물지만 몇십 년 전만 해도 이사나 개업을 할 때면 손님들이 성냥을 선물하곤 했는데, 불씨와 관련된 풍습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불은 숭배의 대상이기도 했다. 솥을 걸 수 있도록 아궁이 위에 흙과 돌을 쌓아 만든 턱인 부뚜막은 불을 다루는 곳이니만큼 부엌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였다. 누구도 부뚜막에 걸터앉지 못하게 했고, 부뚜막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을 주부의 미덕으로 여겼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나라에서는 부뚜막에 부엌을 지키는 신인 조왕신을 모셨다. 부뚜막에 물을 담은 종지를 놓아 조왕신을 섬기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을 ‘조왕보시기’ 또는 ‘조왕중발’이라 한다. 강원도 화전민촌에서는 부뚜막에 불씨를 보호하는 곳인 ‘화투’ 또는 ‘화티’를 만들어두기도 했다. 또 불을 담당하는 조왕신은 더러움을 씻어주는 정화의 신통력이 있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먼 여행에서 돌아오거나 초상집에 다녀온 사람들은 부정한 것이 집안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자 먼저 부엌에 들렸다 나오곤 했다.

구워 먹는 즐거움의 발달사

인류가 불을 발견하면서 시작된 ‘구이’는 여러 조리법 가운데 가장 일찍부터 발달된 것이다. 원시시대에는 사냥과 수렵을 통해 얻어진 재료를 통으로 구워 먹기 시작했고, 이후 불에 돌을 올려놓아 달궈지면 그 위에 물고기나 짐승의 고기 또는 나무 열매 등을 얹어서 구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삼국시대에 소·돼지·닭·양·염소·오리 등의 가축을 기른 기록이 있고, 3~4세기 즈음 배를 만드는 기술이 향상되어 큰 배를 타고 먼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할 수 있게 되어 보다 다양한 육류를 구워서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교의 유입으로 살생을 금하면서 육식의 비중이 줄어들었고, 이러한 풍조는 불교문화가 융성한 고려시대에 이르러 더욱 강화되면서 육식은 점차 쇠퇴하기에 이른다.

조선시대에는 상황이 반전된다. 숭유억불정책이 실시되며 다도의 문화에서 주안상의 문화로 바뀌었고, 다시금 구이 문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굽는 방법도 다양해진다. 조선 영조 때 유학자 유중림이 홍만선의 농업서인 <산림경제>를 증보하여 편찬한 <증보산림경제>에는 기름·간장·소금·파·후추 등을 밀가루죽에 섞어서 고기에 바른 다음 꼬치에 꽂아서 불꽃이 삭은 불 위에서 익혀 밀가루 껍질을 벗겨내고 먹는 구이법이 소개되어 있다. 또 빙허각 이씨가 순조 때 가정 살림에 관해 저술한 조리서인 <규합총서>에는 고기를 익히다가 냉수에 잠깐씩 적셔서 다시 굽거나, 고기에 진흙을 발라 굽는 구이법 등이 소개돼 있다. 조선 후기의 조리서인 <시의전서>에는 고기를 한지나 진흙으로 싸서 굽는 방법 그리고 송이버섯을 굴참나무 잎이나 박 잎으로 싼 후 진흙을 덧발라서 굽는 방법 등이 소개되어 있다.

 

한국 사람들이 즐겨 먹는 구이들

한국인들이 흔히 즐기는 구이 재료는 다음과 같다. 소·돼지·양·닭·오리 등의 가축류가 대표적이며, 고등어·삼치·전어·장어·병어 등의 물고기를 주로 구워 먹는다. 대창, 곱창, 염통, 콩팥 등의 내장도 구이의 재료로 많이 쓰인다. 표고버섯·송이버섯·도라지·더덕 등의 산채류와 김·북어·황태·뱅어포 등의 말린 해산물도 소금구이를 하거나 고추장 양념을 하여 구워 반찬으로 삼는다.

특별한 조리법의 구이류도 많다. 짚불에 고기나 생선 따위를 굽는 짚불구이는 전남 무안의 삼겹살 짚불구이와 부산 기장의 짚불 곰장어가 유명하다. 오리나 닭의 내장을 제거하고 그 안에 갖가지 한약재나 견과류 등을 넣고 종이나 포일로 한 겹 싸서 그 위에 진흙을 발라 굽는 진흙구이는 기름기가 쭉 빠져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양념한 낙지를 지푸라기나 나무 꼬챙이 따위에 끼워 돌돌 말아서 굽는 낙지호롱은 전남 해안가 지방의 별미로 통한다.

최근에는 외식문화가 다양해졌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표적인 외식 메뉴 역시 ‘고기구이’로 통한다. 토막 친 쇠갈비를 양념에 재우거나 소금으로만 간을 해서 숯불에 구워가며 먹는 쇠갈비구이는 여전히 고급스러운 외식 메뉴로 손꼽히며, 돼지의 갈비에 붙은 살인 삼겹살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서민들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는 ‘국민 고기구이’라 할 만하다. 지금은 소갈비구이나 삼겹살에 다소 밀리긴 하지만, 돼지의 가슴 부분에 해당하는 부위를 달짝지근한 양념에 재워서 구워 먹는 돼지갈비는 1960~70년대를 풍미했다. 주로 소고기를 얇게 저며 양념해 구워낸 불고기는 음식의 기원이나 어원에 관해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누가 뭐래도 한국을 대표하는 구이 요리일 것이다.

구이는 열이 고기에 직접 전달되어 표면의 단백질이 먼저 굳게 되므로 육즙을 가두는 효과가 있어 영양분의 손실이 적고, 구워졌을 때 ‘불맛’이라 부르는 독특한 향기는 식욕을 자극한다. 또 여럿이 모여 고기를 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 온 풍경일 것이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은 가족 또는 친구와 함께 고기를 구워야 할 듯하다. 고기의 종류야 아무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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