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전하는 온라인 매거진
Vol 60. 구워 먹는 즐거움을 맛보다
뜨겁게 소중한 맛과 멋 '숯불구이'
지혜로운 한식
고기는 어떻게 먹어도 맛있지만 아무래도 개중에 으뜸은 구워 먹는 것이 아닐까. 굽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뭐니 뭐니 해도 숯불에 굽는 것이 최고다. 우리 민족은 어떻게 이 기막힌 맛을 발견했을까. 숯불구이와 숯의 내력을 따라가 본다.
글 이현주(편집실) 참고자료 숯불구이의 과학(파이낸셜뉴스), 눈오는 밤 먹는 숯불구이 ‘설야멱’(매일경제), 불고기의 역사적 계보 연구(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 34(6)),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숯불에 담긴 풍류
숯불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 눈과 귀, 코까지 오감을 자극한다. 육식을 즐기지 않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 이 모습을 보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군침이 넘어가게 마련이다. 그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나 보다.
조선 후기 조수삼이 쓴 <추재집>에는, 신라에서는 새해 첫날이 되면 임금 앞에서 단향회를 열고, 불을 피워 설야멱을 먹는다고 했다. 단향회는 박달나무로 화로에 불을 지핀 것이고, 설야멱은 대나무에 쇠고기를 끼워 굽는 일종의 꼬치구이라고 했다.
설야멱은 설하멱, 설하멱적이라고도 한다. 문자 그대로 눈 아래서 혹은 눈 오는 밤 찾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이 이름에는 전해오는 고사가 있는데, 송나라 태조가 눈 내리는 밤에 조보의 집을 찾아 주안상을 차려 놓고 국사를 논했던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그 배경이 어떠하건, 설야멱은 이름처럼 눈 오는 밤에 어울리는 음식인 듯싶다. 창밖에 눈이 날리고, 발갛게 달아오른 숯불 위에 고기를 굽는 모습을 상상하면 어쩐지 풍류가 느껴지지 않나. 이는 박지원이 <연암집> ‘만휴당기’에 남긴 글로도 확인할 수 있다.
“눈 내리는 날, 김공 술부 씨와 함께 화로를 마주하고 고기를 구워 먹으며 난로회를 했는데 방안이 연기로 후끈하고 파, 마늘, 고기 굽는 냄새가 온몸에 배었다. 공이 북쪽 창문으로 가서 부채를 부치며 맑고 시원한 곳이 있으니 신선이 사는 곳이 멀지 않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난로회’는 <동국세시기> 10월(음력) 조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조선시대 한양풍속으로 숯불을 지핀 화로를 가운데 놓고 번철(솥뚜껑처럼 생긴 둥글고 넓적한 무쇠그릇)을 올려 쇠고기에 기름, 간장, 파, 마늘, 고춧가루로 조미하여 굽거나 볶아서 둘러앉아 먹은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고기 굽는 실력은 예로부터 널리 유명세를 떨친 것으로 보인다.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 “고려가 원나라에 장가들기 시작한 이후부터 해마다 탐라의 쇠고기를 원나라에 보냈는데 고기뿐만 아니라 고기를 굽는 사람 역시 고려인이었다”고 적고 있다.


숯불로 구워야 제맛인 이유
고기는 프라이팬에 올려 가스불로, 요즘 흔히 쓰는 인덕션으로도 구울 수 있다. 그런데 유독 숯불에 굽는 고기가 맛있는 이유는 뭘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학창 시절 과학 시간에 배운 전도열, 복사열, 대류열을 떠올려야 한다. 이중 전도열은 프라이팬으로 고기를 굽는 경우에 해당한다. 직접적인 열로 익히는 것이 아니라, 프라이팬을 통해 전달되는 열로 고기가 조리되는 것. 이렇게 고기를 구우면 열이 겉부터 속까지 전달되는 시간이 길어 육즙이 빠져나가 아무래도 맛이 덜할 수밖에 없다.
반면 숯불에 고기를 굽는 것은 복사열을 이용하는 것이다. 여름날 창가에서 햇볕을 쬐면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떠올리면 쉽다. 직접 열을 쬐어 익히는 경우 중에서도 숯불구이가 더 맛있는 것은 숯불이 열과 원적외선을 사방으로 방사하며 순식간에 고기를 익히기 때문이다. 숯은 가스가 탈 때보다 훨씬 높은 온도를 낸다. 이렇게 높은 온도 덕분에 고기 표면을 빠르게 익혀 육즙을 가두는 효과를 내고 결과적으로 고기의 맛이 좋아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언제나 숯불구이가 좋은 맛을 내는 것은 아니다. 과학의 힘을 조금 더 빌면 훨씬 좋은 맛을 낼 수 있는데, 숯의 양은 많이, 숯불과 고기의 거리를 최대한 짧게 해 강한 불로 익혀야 육즙이 더 풍부해진다니 기억해 두자.
숯불구이의 맛에는 특유의 향도 한몫을 한다. 그런데 이 향은 숯의 향이 아니라 재료가 지닌 휘발성 성분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기를 숯불 위에서 익히면 육즙이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 여기에는 지방과 기름, 당분, 단백질 등이 가득 들어있는데, 이들이 기화해 다시 고기 표면에 붙어 특유의 향을 만드는 것이다.
고기를 달궈진 숯불 위에 얹으면 “치이~”하는 소리를 내며 연기와 향이 피어오른다. 이렇듯 향을 입어 숯불구이는 더욱 맛이 나지만 문제는 이때 벤조피렌이라는 발암물질도 함께 생겨난다는 점. 그래서 숯불구이를 꺼리는 사람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우리처럼 고기가 주식이 아니고, 매일 상당량의 숯불구이를 먹는 것은 아니므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태초에 숯이 있었다
숯은 나무를 숯가마에 넣어 구워낸 연료를 일컫는다. ‘연료’로 정의되어 있지만, 한때 숯이 생활 전반에서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다. 공기정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집 구석구석에 숯을 장식하고, 몸의 노폐물 제거에 좋다고 해 먹기도 했다. 유행이 조금 지났다 싶을 뿐 이러한 숯의 효능은 변함이 없다. 그만큼 숯은 고맙고 소중한 존재다.
숯은 인간이 불을 발견하고 이용하기 시작할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약 2,600년 전부터 숯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숯은 한번 얻은 불씨를 보관하는 데 유용하게 쓰였다. 그 옛날 불씨를 꺼트리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3대를 이어오는 불씨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숯불 보관은 한 가문의 품격을 상징하기도 했다. 불씨가 꺼져 옆집에 빌리러 가는 것이 일종의 수치였을 정도다.
숯은 흑탄과 백탄 두 종류로 나뉜다. 흑탄은 600∼700℃로 정련한 뒤 숯가마 안에 이삼일 두었다가 100℃ 정도 됐을 때 꺼낸 것이고, 백탄은 800∼1300℃의 높은 온도로 정련한 뒤 꺼내 흙·재·탄불을 혼합한 '소분'을 덮어 빠른 속도로 불기를 꺼버린 것이다. 이렇듯 숯은 만드는 데는 정성과 시간이 필요하다.
요즘 음식점에서는 정통 숯보다 압축탄을 많이 사용해 아쉽지만 그렇다고 숯불구이를 포기할 순 없다. 이 겨울, 우리 조상들처럼 눈 내리는 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숯불구이로 풍류를 즐겨보면 어떨까. 고기를 굽지 않아도, 한적한 곳으로 캠핑을 떠나 즐기는 숯불 ‘불멍’이라면 더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