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전하는 온라인 매거진
Vol 49. 나물, 사람을 위한 음식, 자연을 살리는 음식
한식이 궁금해?! 밥돌과 한식 살펴보기
한식 상식 톡
우리는 한식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을까? 평소 가지고 있는 한식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보자
자료 출처.
① <음식으로 읽는 한국 생활사>(윤덕노, 깊은나무)
② <산 들 밭 나물이야기>(김주혜·유지원, 한살림)
③ <누들 로드>(이욱정, 위즈덤하우스)
④ <식탁 위의 한국사>(주영하, 휴머니스트)
Q. 봄이 되면 산에서 다양한 나물을 볼 수 있는데요. 아무나 채취할 수 있는 건가요?
나물이 보인다고 함부로 나물을 캐서는 안 됩니다. 자칫 범죄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국립공원은 허가받지 않고 나물을 캐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산나물 채취를 위해서는 산림청이나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산림 내 임산물을 소유자 동의 없이 불법으로 채취하다 적발되면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73조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 벌금의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허가받았다고 하더라도 산에는 산나물로 오인할 수 있는 야생식물류나 독초가 많으므로 채취에 주의해야 합니다.
Q. 맛있는 나물을 고르기 위해서는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구매 후에는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나물을 고를 때는 색이 선명하고, 잎은 너무 크거나 억세지 않고, 무르거나 시들지 않았으며, 나물 특유 향이 잘 나는 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생나물 보관 시 키친타월로 감싸고 신문지로 한 번 더 싼 후 비닐 팩에 담아두면 일주일 정도 싱싱하게 보관할 수 있습니다. 오래 보관하고 싶다면 나물을 데친 후 물기를 짜지 않은 채로 한 번에 사용할 분량만큼 용기에 담아 냉동합니다. 물기를 짜지 않는 이유는 여분의 수분을 함께 얼려야 나중에 수분이 빠져 질겨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Q. 나물 양념이 유독 어려운 것 같아요. 간단한 양념 방법이 있을까요?
네 가지 정도의 양념을 배워두고, 나물에 맞춰 버무려 주면 맛있는 나물 무침을 먹을 수 있습니다. 된장 양념은 냉이·유채 나물, 고추장 양념은 돌나물·씀바귀 같이 쓴 맛 나는 나물, 액젓 양념은 봄동·부추·참나물 같이 익히지 않은 상태의 생나물, 간장 양념은 시금치·취나물 등에 어울립니다.
- 된장 양념: 된장 1큰술, 조청 1/2 큰술, 다진 마늘 1작은술, 참기름 2작은술
- 고추장 양념: 고추장 1큰술, 식초 2작은술, 설탕 1작은술, 고춧가루 1작은술, 다진 파 2작은술, 다진 마늘 1큰술, 참기름 1작은술, 통깨 1작은술
- 액젓 양념: 멸치액젓 1큰술, 고춧가루 1큰술, 다진 마늘 1작은술, 다진 파 1작은술, 깨소금 1큰술, 설탕 1/2작은술, 참기름 2작은술
- 간장 양념: 국간장 2큰술, 다진 파 1큰술, 다진 마늘 1작은술, 통깨 1작은술, 들기름 1큰술

Q.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면을 먹었나요?
학자들은 국수를 가리키는 ‘면(麵)’이라는 글자가 처음 우리나라 기록에 등장한 시기를 조선시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조선시대 문헌에는 국수를 가리키는 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조선 초기 문헌 속 녹두 전분을 가지고 국수를 만들어 먹은 예가 그중 하나입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녹말묵을 얼음물에 헹구고 물기를 뺀 후 칼국수 반죽처럼 말아서 칼로 썰어 오미자 국물이나 깻국에 넣어 먹었다고 합니다. 오미자 국물에 만 국수를 ‘착면’이라 하고 깻국에 넣은 국수를 ‘토장녹두화나’라고 불렀습니다. 이 음식의 상세한 조리법은 1670년에 발간된 요리서 <음식디미방>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음식디미방>은 조선 현종 때 유학자 이시명의 아내 안동 장씨가 쓴 요리서로, 동아시아에서 여성이 쓴 최초의 요리서이자 한글로 쓴 최초의 요리서입니다. <음식디미방>에는 또 다른 국수인 ‘시면’이 등장하는데, 물에 섞어 흐물하게 만든 녹두 전분을 바닥에 구멍이 뚫린 표주박에 넣어 끓는 물에 떨어뜨려 면발을 뽑는 국수입니다.
Q. 멸치육수에 말아 먹는 국수를 ‘잔치국수’라고 부르기도 하고, 예전부터 결혼식 등의 잔칫날에는 국수를 먹었죠. 그런데 왜 국수가 잔치 음식이 된 건가요?
조선시대만 해도 밀가루는 진짜 가루라는 뜻으로 진가루(眞末)라고 부를 만큼 귀한 식재료였습니다. 그래서 회갑이나 돌잔치 같은 특별한 잔칫날에나 밀가루 국수를 먹으며 장수의 소망을 빌었죠. 지금은 국수가 너무나 흔해졌기 때문에 잔칫날 국수를 내놓는 일이 거의 없고 값싸도 준비하기 간편해서 잔칫날 국수를 준비했던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지만, 잔치국수는 밀가루가 귀하던 시절 그 어떤 음식보다 귀하고 훌륭한 음식이 국수였기에 잔칫날 축하객으로 온 손님을 접대하는 음식으로 내놓았던 것입니다.
Q. 냉면처럼 국수를 차갑게 먹는 나라가 거의 없다고 알고 있는데요.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냉면을 만들어 먹었나요?
냉면의 기원을 찾는 건 쉽지 않습니다. 문자 그대로 차가운 국수라는 뜻의 냉면(冷麪)이 문헌에 보이는 것은 17세기 초반, 인조 때 활동한 문인 장유의 <계곡집>입니다. 냉면을 먹으면서 쓴 시인데 자줏빛 육수의 냉면을 먹으면서 독특한 맛이라고 표현했죠.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냉도(冷淘)라는 음식이 찾을 수 있습니다. 고려 말기의 목은 이색은 냉도를 먹으니 시원하다는 내용의 시를 읊은 적이 있죠. 하지만 냉도는 중국에서 먹는 차가운 밀가루 국수 내지는 찬 수제비 종류였으니 우리의 냉면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냉면의 기록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18세기 이후입니다. 다산 정약용은 면발이 긴 냉면에다 김치인 승저를 곁들여 먹는다고 했죠. 정약용과 같은 시대를 산 실학자 유득공 역시 평양을 여행하면서 가을이면 평양의 냉면 값이 오른다고 했는데, 그 정도로 평양 사람들이 냉면을 많이 먹었음을 알 수 있는 구절입니다.
Q. 냉면을 왜 겨울 음식이라고 부르나요?
겨울에 냉면을 먹는 풍속은 조선 후기 평안도나 황해도 사람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일이었습니다. 평안도와 황해도 북부 지역 사람들은 음력 11월이 되면 계절 음식으로 냉면을 즐겨 먹었습니다. 냉면같이 차가운 국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얼음이 필요한데 겨울에는 동치미 국물이 얼어버려 따로 얼음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1910년대 근대적인 제빙 기술이 도입되면서 사람들은 냉면을 여름 음식으로 즐겨 먹기 시작했고, 이제 냉면은 겨울과 여름은 물론이고 봄이나 가을에도 먹는 사시사철 음식이 되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