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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의 식탁, 한식에 담긴 나눔의 정신

한식 인사이트

2026/10/13 16: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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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농경 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음식을 나눠 먹었다. 다른 동물과 달리 사람은 뇌가 완전히 성장할 때까지 아이는 물론, 아이를 돌보는 이도 스스로 식량을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공백을 ‘나눔’으로 채웠다. 라틴어로 ‘함께(com) 식탁(mensa)에 앉는다’는 뜻의 커먼셜리티(commensality) 습성은 다른 동물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인류만의 특징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습성은 생존을 넘어 유대감과 공동체 의식으로 발전했다. 같은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일이 곧 같은 살과 피를 만드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절기 음식에서 김장 문화, 그리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K-푸드까지, 한국인의 밥상에 켜켜이 쌓인 나눔과 배려의 마음은 이제 세계의 식탁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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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이러한 공식(共食)의 습성은 절기마다 음식을 해 먹는 절식(節食) 문화로 오랫동안 이어져왔다. 사계절이 뚜렷한 농경 사회에서는 계절이 바뀔 때와 명절마다 그때 수확한 곡식과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정월대보름의 오곡밥, 추석의 신도주(新稻酒)와 오려송편, 10월 상달의 시루떡 등이 대표적이다.

이 음식들은 애초부터 ‘나눔’을 목적으로 만들었다. 조선 헌종 때 문인 정학유가 지은 가사 <농가월령가>에는 “신도주 오려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선산의 제물 하고 이웃집이 서로 나누어 먹세”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름처럼 새로 거둔 쌀(新稻)로 빚은 신도주와 올벼의 옛말인 오려로 만든 송편을 나누어 먹으며 수확의 기쁨을 함께 누린 것이다. 이는 공동 노동이 필연적이던 농경 사회에서 오랫동안 뿌리내린 삶의 방식이기도 했다. 모내기∙김매기∙추수처럼 일손이 한꺼번에 필요할 때마다 사람들은 품앗이로 노동을 나눴고, 수확한 음식으로 서로의 노고에 보답했다. 일꾼들에게 나이 수만큼 나누어주며 농사일의 시작을 격려하던 중화절의 ‘나이떡’, 액운을 쫓는 붉은팥으로 만들어 이웃과 나눠 먹던 10월 상달의 ‘고사떡’은 이러한 공동 식사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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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공동체 음식 문화는 단순한 노동 교환에 그치지 않았다. 김장 날 풍경만 봐도 한국인에게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사회적 결연의 장이었다. “김장 때는 규중 규수도 나온다”는 옛말처럼 4~5개월 동안 한 가족이 먹을 어마어마한 양의 김치를 담그기 위해 온 동네가 힘을 모았다. 부엌일에 관여하지 않던 남성들도 배추와 소금을 옮기고, 항아리를 땅에 묻었으며, 형편이 어려운 여성들은 일손을 돕고 재료를 얻어 가기도 했다. 김장이 끝나면 수육에 속대쌈을 싸 먹으며 김장의 고단함을 풀었고, 담근 김치와 절인 배추 및 남은 김칫소를 이웃과 나눴다.

긴긴 겨울을 나기 위한 ‘생존의 음식 품앗이’이던 김장을 2013년 유네스코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료 준비와 조리, 함께 식사하는 모든 과정이 상호 소통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등재 명칭 역시 ‘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다. 최근에는 코덱스(Codex, 국제식품규격위원회)도 이 흐름에 힘을 보탰다. 2026년 4월, 코덱스는 2001년부터 사용해온 김치 국제 규격의 원재료명 표기에 ‘chinese cabbage’와 함께 ‘kimchi cabbage’를 추가했다. 25년 만에 배추의 이름에 한국식 표현이 반영된 것이다.

음식을 나누는 대상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옛 어른들은 첫서리가 내리면 추위와 허기에 시달릴 날짐승을 위해 ‘까치밥’ 몇 개를 꼭 남겨놓았다. 정월대보름 아침, 사람이 밥을 먹기 전 소에게 쌀밥과 나물을 차려주던 ‘소밥주기’ 풍습 또한 한 해 농사를 함께 지은 소에게 전하는 감사의 마음이었다.

음식을 나누는 커먼셜리티의 철학은 한국인의 밥상 곳곳에 이어지고 있다. 조선 숙종 때 어의 이시필이 쓴 《소문사설》에는 신선로를 두고 “손님이 모였을 때 여럿이 둘러앉아 먹는 것이 각상을 놓는 것보다 운치가 있다”고 적혀 있다. 한 그릇을 가운데 두고 함께 나눠 먹어야 ‘입을 즐겁게 한다(悅口子)’는 신선로 본래의 가치가 비로소 살아나기 때문이다. 귀하던 밀가루로 만들어 혼례나 환갑잔치 때 나누던 잔치국수 역시 긴 면발에 인연의 지속과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하객에게 대접하던 환대의 음식이다.

이처럼 상 위에서 직접 가열하며 재료를 넣어 함께 나눠 먹는 전골과 닭한마리, 닭갈비 등의 문화는 오늘날 외식업의 주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나아가 ‘한솥밥’의 정신을 담은 비빔밥 역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세계 속에서 문화적 가치를 넓혀가는 중이다. 여기에 <대환장 기안장>, <흑백요리사> 같은 K-콘텐츠까지 더해지면서 한식은 ‘함께 나눠야 비로소 완성되는 음식’이라는 친숙하고 매력적인 메시지로 전 세계 소비자를 한 상 앞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참고 자료

Glynn Isaac, ‘The Food-sharing Behavior of Protohuman Hominids’, Scientific American 238(4), 1978. 

Kuzawa et al., ‘Metabolic costs and evolutionary implications of human brain development’, PNAS 111(36), 2014.

《숲 사람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 《K FOOD: 한식의 비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소문사설》, <농가월령가>, 문화재청·유네스코한국위원회 ‘김장 문화(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2013), 조선일보 <비빔밥 정신> 2000년 6월 15일 자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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