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읽기 좋은 날
‘한식의 대모’ 조희숙 셰프가 말하는 한식의 길
한식 대담
한식의 대모로 불리며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요리들로 세계를 매료시킨 조희숙 셰프. 그는 중학교에서 가정 과목 교사로 재직하다 1983년, 당시 이름을 떨치던 세종호텔 한식당에서 요리 일을 시작했다. 이후 노보텔 앰배서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신라호텔의 한식당을 거친 뒤 2005년 미국 워싱턴 주재 한국대사관저의 총주방장을 맡았으며, 2019년에는 한식 전문 레스토랑 ‘한식공간’의 오너 셰프로 활동하며 미쉐린 1 스타를 획득하는 등 다방면에서 한식 산업을 이끌어 온 인물이다.
조리 현장은 물론이고 메뉴 컨설팅, 민관 협업 행사, 한식 교육까지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모습에서 한식에 대한 그의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조희숙 셰프는 오랜 노하우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한식의 가치와 미래를 고민하며, 한식 교육과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터뷰를 통해 한식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한식에 대한 그의 철학을 들어보았다.
Q. 대학 강의부터 도제식 제자 양성, 재능 기부까지 오랜 시간 한식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인재를 양성하는 데 힘써 오셨는데요. 이렇게 한식 교육에 헌신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조희숙 셰프 저는 사범대학 가정교육과를 나와서 학교 선생님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전공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음식이라는 길로 이어졌고, 그 시작이 교육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식을 가르치는 일에도 힘쓰게 된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는 조리사로 살아오면서 그동안 경험했던 성과와 실패들을 후배들에게 공유하고 그들의 성장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우리나라보다 식문화 부분에서 선진화를 이룬 국가들의 음식과 문화를 접하다 보니, 저 또한 우리 음식문화 발전에 기여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죠. 그러기 위해서는 한식 분야의 ‘사람’을 키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고 한식 교육 및 인재양성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Q. 한식을 가르치실 때 가장 중점을 두거나 신경 쓰는 부분이 있으시다면?
조희숙 셰프 한식을 가르칠 때는 ‘연구하는 자세’로 요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정확한 프로세스와 더 나은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단순히 반복하고 숙달하는 ‘기능적’인 요리를 넘어, 자신만의 생각과 개성을 담아낼 수 있는 ‘기술적’인 요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더 나아가서는 자신만의 영역과 철학을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이런 단계에 진입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Q. 한식을 가르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셨을 때는 언제인가요?
조희숙 셰프 제가 가르쳐 주었던 아이디어나 조리 방법보다 더 나은 것을 찾아 자신만의 단계에 올라서는 후배나 제자들을 볼 때 기쁘고 보람됩니다. 그럴 때 제가 오히려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또, 조리학교에서 가르쳤던 학생들이 성장해서 이제는 서로 의지하고 힘을 합쳐 일을 하게 되는 동반자적인 관계가 될 때 감회가 참 새롭습니다.
Q. 40년이 넘는 세월 한 분야에 몰두하시는 모습이 한식업계 종사자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많은 귀감을 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 분야에서 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조희숙 셰프 스스로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수시로 묻고 제 자신을 설득하면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 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 자신의 삶, 그리고 한식을 요리하는 일에 대한 포기할 수 없는 애정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가치 있고 보람될지 고민했을 때, 이 일이 가장 저와 잘 맞았고 즐거웠고 잘할 수 있는 일이었거든요.
또, 지금까지 이 일을 해오면서 사업을 하고 돈을 더 많이 버는 것 보다 앞으로 내가 남기고 물려주고 갈 것들에게 대한 생각이 더 많았기 때문에 이렇게 오래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셰프님의 롤모델 혹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은 누구인가요?
조희숙 셰프 한국전래음식연구회의 이말순 선생님으로부터 반가음식에 대해 가르침을 받고, 아무리 사소한 것도 허투르지 않게 음식을 하는 ‘곧고 한결 같은 마음’을 배웠습니다. 이말순 선생님은 반가음식과 전래음식의 대가인 강인희 선생님의 전승자로, 한식 고유의 조리법을 보존해 오신 분입니다. 저 역시 선생님처럼 음식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흔들리지 않는 태도로 조리에 임해야겠다는 것을 느껴 음식을 할 때마다 제 자신을 다잡게 됩니다.
Q. 요즘 한식의 인기가 뜨겁습니다. 다방면에서 한식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는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조희숙 셰프 인기몰이 한식과 뿌리 깊은 역사의 한식, 두 축이 적절하게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과 같은 한식의 열풍은 그동안 국가의 정책과 예산의 뒷받침을 바탕으로 여러 문화적 요소가 합해지며 시너지를 일으킨 결과라고 생각하는데요. 치킨과 같이 세계인이 좋아하는 K-푸드 또한 하나의 흐름으로 가져가되, 또 한편으로는 이런 절체절명의 기회가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식이 갖는 고유한 문화적 특징과 역사성, 그리고 음식으로서의 우수성이 함께 드러나야 하는 것이죠.
우리의 정통성을 지키는 줄기가 있어야 변형할 때도 뿌리가 있는 음식이 나오는데, 이것이 흔들리거나 없어지면 명분이 없는 요리가 됩니다. 산업적으로 봤을 때 분명히 우리만의 색깔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한식의 위상이 견고해지고, 우리 음식문화가 올바르게 확산될 수 있을 것입니다.
Q. 한식을 업으로 삼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조리학과 학생이나 현장의 후배 요리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조희숙 셰프 왜 한식을 하고자 하는지 그 목표가 확고해야 합니다. 전망이 밝다는 것이 선택의 중요 요건이 되겠지만, 단지 요즘의 흐름만 좇아 한식 조리를 평생의 업으로 삼기에는 녹록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식을 하는 업’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소명의식, 그리고 한식에 대해 애정과 남다른 관심을 갖는 것이 한식을 업으로 삼는 출발점이자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정진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조희숙 셰프 제가 현장에서 일했을 때는 주어진 메뉴를 관습적으로, 늘 해오던 대로 조리하기에 급급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이제는 지금까지 연구하고 쌓아온 자료들을 활용해 우리가 하는 요리가 어떤 과학적인 원리에 의해 이루어지는지 역으로 증명해 내는 작업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조리과학 이론과 인문학 공부를 더 해보면서, 한식에 대한 제 경험과 여러 이론을 총체적으로 집대성하는 일을 해 보고자 합니다. 그동안 쌓아온 경험들이 한식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막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미래 한식 인력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어 쓰임을 다 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