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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우수 한식당 <수길> 인터뷰
한식과 사람들
<수길(SOOGIL)> 인터뷰">
익숙한 식재료의 색다른 변주는 음식에 즐거움을 더해 준다. 한국의 맛에 프렌치 테크닉을 가미해 개성 있는 한식을 선보이는 ‘수길(SOOGIL)’은 이 묘미를 제대로 보여주는 파인다이닝 식당이다.
뉴욕 맨해튼에 소재한 수길은 임수길 셰프의 지휘 아래 ‘프렌치 코리안’이라는 독특한 콘셉트의 요리를 제공한다. 서구적인 감각과 한식을 결합해 현지에서 호평을 받은 데 이어,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이 지정한 ‘해외 우수 한식당’에 선정되기도 했다.
수길의 요리가 식사를 넘어 즐겁고 행복한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는 임수길 셰프를 만났다.

인생을 담은 ‘프렌치 코리안’ 한식당
책상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는 말처럼, 식당을 들여다보면 요리사의 삶이 보인다. ‘수길’ 역시 임수길 셰프의 요리 인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뉴욕 최고의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손꼽히는 ‘다니엘(Daniel)’에서 한국인 최초로 수셰프 자리까지 오른 임 셰프는 이후 한식당 ‘한잔(Hanjan)’의 주방장으로 요리 경력을 쌓았다. 본인의 이름을 딴 ‘수길’이 한식과 프랑스 요리의 접점을 탐구하는 식당이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루 200명 이상 방문하는 최고급 식당 ‘다니엘’에서 7년간 일하며 프랑스 요리 기술을 습득했고, ‘한잔’에서는 4년 동안 다양한 한식을 만드는 동시에 식당 운영을 간접적으로 경험했습니다. ‘수길’은 이러한 제 과거 경험을 현재로 가져온 식당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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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길은 테이스팅 메뉴(Tasting Menu), 즉 코스 요리만 제공한다. 현재는 4코스로 구성된 정식과 6코스의 테이스팅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고급 미식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테이스팅 메뉴를 도입한 데에는 남다른 배경이 있다. 임 셰프는 “팬데믹 시기에 어렵사리 집 밖을 나와 식당을 방문해 주신 손님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다”며 “고민 끝에 현지인들이 사랑하는 고급 식재료를 조연으로 쓰되, 고추장, 간장, 된장 등 한식이 주인공이 되는 나만의 테이스팅 메뉴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높은 가격의 테이스팅 메뉴를 내놓는 것은 임 셰프에게도 큰 도전이었다. 수길이 위치한 이스트 빌리지는 저렴한 식당이 많은 대학가였고, 식당의 인테리어도 통상적인 프리미엄 레스토랑과는 달랐기 때문. 임 셰프는 “다양한 사례를 조사하면서 메뉴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화려한 인테리어가 아닌 요리사의 경력과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라고 느꼈다”며 “테이스팅 메뉴를 통해 하고 싶었던 요리를 만들게 되며 손님들의 호응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임 셰프는 “식당을 오픈한 지 6년이 지났는데, 지금까지 잘 운영을 하고 있는 이유는 이러한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식에서 영감을 받고 한식으로 맛을 낸 요리”
누룽지 푸아그라, 은대구 고추장 구이, 블랙 트러플을 넣은 된장 스프까지. 가히 독창적인 수길의 요리는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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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치말이 잿방어와 된장 스프
백김치와 사과를 잿방어로 말아 캐비어를 올린 ‘김치말이 잿방어’ 요리는 경상도식 식당에서 신김치와 회를 같이 내어주는 것에서 착안했다. 된장국과 가리비, 감자, 서양송로버섯으로 만든 ‘된장스프’ 역시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된장찌개 속 다양한 재료를 연상하며 만들었다.
▲ 누룽지 푸아그라
식당 오픈 이래 꾸준하게 사랑받고 있는 ‘누룽지 푸아그라’는 돌솥 비빔밥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뜨거운 철판에 누룽지를 만들고 그 위에 양파, 푸아그라와 배 등을 얹은 요리다. 화룡점정인 간장 소스는 서버가 손님 앞에서 따라주며 한국의 전통 장을 알린다. 임 셰프는 “보통 푸아그라를 빵과 같이 먹지만, 빵 대신 밥과 간장을 사용함으로써 한식을 접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수길 셰프는 맛의 밑바탕이 되는 소스에 한국적인 정체성을 담아낸다. 그는 “코스 메뉴를 구상하면서 한식의 중심이 되는 간장, 된장, 고추장을 각 코스별로 넣었다”고 언급했다. 수길의 시그니처 메뉴인 ‘비프 웰링턴’에도 간장과 설렁탕 베이스의 소스가 사용된다. 송아지뼈를 하루 동안 고아 만든 설렁탕에 간장과 레드와인을 넣고 졸여 맛의 변화를 꾀한 것.

▲ 수길의 시그니처 메뉴 비프 웰링턴. 비프 웰링턴은 소고기에 푸아그라와 버섯 페이스트를 바르고 반죽을 입혀 구운 요리다.
임 셰프는 “요리를 언뜻 봤을 때 한국 음식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여기에 활용된 한국의 장맛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며 “메뉴판에 한국어 표기로 기입하는 것은 물론, 손님들에게 음식을 내어 드리는 스태프들도 된장, 고추장, 간장 등을 한국어 발음 그대로 소개하며 설명해 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 국산 식재료를 활용해 만든 은대구 고추장 구이와 성게알 비빔밥
전통 장 뿐만이 아니다. 수길은 신고배, 다시마, 김, 명란젓, 딸기 등 국산 식재료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어머니가 한국에서 보내주시는 다시마로 육수를 우리거나, 국산 배를 고명으로 쓰는 등 한국의 맛이 요리에 스며들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국산 식재료와 식기 사용은 물론, 식당 곳곳에 한국 도자기를 비치해 한국적인 미를 더했습니다. 한식당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작은 노력이죠.”

글로벌 미식 업계를 사로잡고 있는 한식
뉴욕에서 오랜 시간 동안 파인다이닝 업계에 몸담았던 임수길 셰프가 보는 한식의 현재와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임 셰프는 “미쉐린 가이드에서 스타를 받은 한식당도 11곳으로 늘어나고, 뉴욕타임즈에서도 한식 파인다이닝을 특집 기사로 다루는 등 한식의 고급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며 “수길과 같은 모던한 한식을 표방하는 식당이 크게 늘어났고, 지역적으로도 다양하게 확산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또 “기존 한인타운 한식당과 차별화된 점은 셰프들이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을 더해 현지화한 한식을 선보인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임 셰프는 “맨해튼 전역에 한식의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 같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테이스팅 메뉴만을 고집하는 고급 한식당부터 한국식 치킨집과 국밥 전문점 등 다양한 재미가 있는 한식당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 이유다. 그 역시 변화의 물결에 발맞춰 두번째 한식당 ‘라온(Raon)’을 준비하고 있다.
“라온은 순우리말로 ‘즐거움’을 의미합니다. 수길이 한식과 프랑스 요리라는 제 과거 경험을 결합한 식당이라면, 라온은 한식을 뿌리에 두고 혁신적인 요리를 선보이는 미래 지향적 한식당으로 구상하고 있습니다.”

임수길 셰프는 연암 박지원 선생의 ‘법고창신(法古創新)’ 정신을 늘 되새긴다고 말했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의 사자성어에서 수길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한식을 기반으로 새로운 요리를 꽃피우는 수길이 또 어떤 유니크한 음식으로 즐거움을 전해줄지 기대해 본다.
위치 │ 108 East 4th Street, New York, NY 10003
영업시간 │ 수요일-목요일 (5:30PM~10:30PM) / 금요일-일요일 (5:00PM~11:00PM) / 월요일-화요일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