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읽기 좋은 날
Vol 9. 남해 품은 食의 바다, 경상남도
남해 품은 食의 바다, 경상남도 ③
향토 미식 로드 _ 다찌
애주가의 사계절 파라다이스 다찌
술만큼 안주를 찾는 애주가라면, 임금님 수라상 못지않은 바다의 술상을 받고 싶다면 바로 ‘다찌’가 정답. 경쟁하듯 숨 가쁘게 그릇이 놓일 때마다 틈 없이 빽빽한 산해진미에 입이 떡 벌어진다. 상다리가 휘어진다는 말도 여기서 유래되었지 싶다. 꼼지락거리는 농어의 리듬에 활전복이 꿈틀대고, 웨이브를 타던 산낙지가 좌우로 몸을 비트는 풍경. 사방을 뛰노는 통영의 산물이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을 건넨다.
‘다찌’는 일본 선술집을 뜻하는 ‘다찌노미’에서 따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통영 다찌’는
‘다찌노미’처럼 서서 급히 술을 마시기보단
느긋하게 앉아 술과 음식을 즐기는 통영 스타일로 재해석됐다.
경남 곳곳엔 일정 금액을 내면 술과 안주가 푸짐하게 나오는 술집 문화가 있다. 사천(삼천포)의 ‘실비집’이 그렇고, 마산엔‘통술집’, 통영엔 ‘다찌’가 있다. 아마도 바다 인근이라 횟감을 비롯한 맛깔나는 안주가 사시사철 풍족했기 때문이리라. ‘다찌’라는 용어의 유래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일본 선술집을 뜻하는 ‘다찌노미’에서 따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통영 다찌’는 ‘다찌노미’처럼 서서 급히 술을 마시기보단 느긋하게 앉아 술과 음식을 즐기는 통영 스타일로 재해석됐다.
사실 다찌엔 없는 게 더 많아 훨씬 풍요롭다.
일단 메뉴판이 없고, 쓰끼다시(곁들이 안주)도 없다.
정해진 메뉴가 없어 매일 새벽 시장에 나가 가장 신선한 제철 식재료를 엄선하는데,
장본 결과에 따라 오늘의 안주 코스가 탄생한다.
다찌는 술값만 받고 안주값은 받지 않는 것이 특징. 상대적으로 비싸 보이는 술값엔 이미 안주값이 포함돼 있다. 한데 요즘은 객의 숫자에 따라 술 3병이 기본인 2인상, 술 6병이 기본인 4인상 등을 시킬 수 있어 꽤 합리적인 가격에 버라이어티한 일품요리도 맛보며 얼큰하게 취할 수 있다. 사실 다찌엔 없는 게 더 많아 훨씬 풍요롭다. 일단 메뉴판이 없고, 쓰끼다시(곁들이 안주)도 없다. 정해진 메뉴가 없어 매일 새벽 시장에 나가 가장 신선한 제철 식재료를 엄선하는데, 장본 결과에 따라 오늘의 안주 코스가 탄생한다. 넉넉한 주인장의 배포가 요리의 종류와 가짓수를 결정하는 것. 때마다 바뀌는 메뉴 구성은 단골뿐 아니라 지나가는 여행객의 호기심도 불러일으킨다. 한편 쓰끼다시(곁들이 안주)가 없는 건 모든 요리가 메인 디시이기 때문. 에피타이저로 자연산 전복 내장과 살이 듬뿍 들어간 ‘전복죽’을 내놓을 만큼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여길 수 없다.
앞다투어 요리가 나올 때마다 점점 무르익는 잔칫집 분위기.
크게 2라운드에 걸쳐 상이 차려지는데
제1라운드는 차가운 음식 열전이다.
<벅수 다찌>는 16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며 동네 주민에게 제대로 인정받은 대표 다찌. 2인상, 3인상, 4인상이 메뉴를 대신하며, 방이 아닌 마루를 택하면 오픈키친처럼 조리 과정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앞다투어 요리가 나올 때마다 점점 무르익는 잔칫집 분위기. 크게 2라운드에 걸쳐 상이 차려지는데 제1라운드는 차가운 음식 열전이다. 전복과 멍게, 피조개, 문어, 미더덕 등으로 이뤄진 해산물 모듬을 시작으로 전복장과 돌게장, 멸치회무침, 곱게 썬 농어회, 와다(해삼 내장), 산낙지, 꽃게회 등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그중 꽃게회는 <벅수 다찌>만의 비밀병기. 간장에 절인 꽃게가 풍미는 좋지만 지나치게 간이 세지는 점에 착안, 생물 꽃게를 급속 냉동해 손님상에 나갈 때마다 꺼내 바로 손질한 뒤 비법 간장 소스를 뿌려낸다. 달콤한 과일향과 신선하면서도 적당히 짭짤한 감칠맛이 술안주로 제격. 좀처럼 주인공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이곳만의 시그너처 메뉴다.
개조개구이 ‘유곽’은 충무 사람만이 만들고,
그 맛을 안다는 일품 조개 요리.
조선 중기 삼도수군통제사들이 통양(충무)으로 내려오며
시작된 궁중 요리로, 손이 많이 가는 섬세한 조리 과정이 뒤따른다.
다음 라운드는 갓 조리를 마친 뜨거운 음식 퍼레이드. 갈치구이로 출발해 새우구이, 가리비찜, 소라찜, 고등어조림, 매운탕, 튀김, 전 등이 이어지는데 하이라이트는 이름도 생소한 ‘유곽’이다. 개조개구이 ‘유곽’은 충무 사람만이 만들고, 그 맛을 안다는 일품 조개 요리. 조선 중기 삼도수군통제사들이 통양(충무)으로 내려오며 시작된 궁중 요리로, 손이 많이 가는 섬세한 조리 과정이 뒤따른다. 일일이 양파와 당근, 대파, 방아잎, 개조갯살을 잘게 다져 냄비에 넣고 익히는 것이 1단계. 이때 물은 따로 붓지 않고, 채소에서 나오는 수분만 사용한다.
생전 처음 맛보는 동남아풍 향신채와
전통 궁중 요리의 하모니.
통영 다찌는 메인 디시 하나만으로도 만족스럽게 제값을 한다.
된장을 넣고 찹쌀가루로 윤기를 낸 뒤 마늘과 땡초, 방아잎을 더해 약불에서 살짝 양념하는 것이 2단계. 개조개 껍질에 준비된 조갯살과 야채 범벅을 소처럼 채워 그릴에 구우면 완성된다. 적당히 무른 채소와 쫄깃한 조갯살로 씹는 재미가 있고, 방아잎의 향이 청량하고 짜릿한 끝맛을 선사한다. 생전 처음 맛보는 동남아풍 향신채와 전통 궁중 요리의 하모니. 통영 다찌는 메인 디시 하나만으로도 만족스럽게 제값을 한다.
Where to Eat?
>> 벅수 다찌
A 경상남도 통영시 항남2길 15-8
T 055-641-4684
H 평일 12:30-21:30(둘째, 넷째 주 월요일 휴무), 주말 12:30-22:30
에디터 전채련 사진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