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읽기 좋은 날
Vol 48. 건강 기원 음식, 한 해의 건강을 빌다
선조들의 지혜를 엿보다 ─ 건강 기원 음식에 담긴 과학
한식의 신발견
우리 선조들은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설날을 지나 본격적으로 여름 농사를 준비하는 정월 대보름이 되면 건강과 풍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다양한 음식을 마련해 이웃과 나누어 먹었다.
오곡밥과 묵은 나물, 부럼 등 정월 대보름 음식을 살펴보면 실제 이맘때쯤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영양을 고루 갖추고 있어 놀라움을 자아낸다.
지역마다 집집마다 차이가 있지만, 오곡밥은 흔히 흰 찹쌀과 푸른색 차조, 황색 수수, 붉은 팥, 검은 콩을 넣어 짓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섯 가지 잡곡의 색깔이 어우러져 보는 것만으로도 포만감이 느껴지는 듯하지만 여러 곡물이 품고 있는 영양 성분이 어우러져 건강상 이점도 꽉 들어찼다.
먼저 찹쌀의 영양 성분을 살펴보면, 양질의 단백질과 비타민, 무기질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활동량이 많아질 봄철을 대비해 체내의 에너지 생성을 돕고 기력을 보충하는 데 탁월한 작용을 한다. 또한, 아밀로펙틴의 비율이 높아 소화가 잘 되고, 따뜻한 성질로 인해 설사 증상을 예방,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이외에도 항산화 성분인 비타민E가 풍부하게 함유돼 있어 노화 방지와 피부 건강을 유지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차조는 무기질과 티아민을 풍부하게 품고 있어 쌀의 영양을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이외에도 식이섬유가 풍부해 장운동을 촉진하고 장내 독소 생성을 막아주는 작용으로, 현대에 와서는 대장암 예방을 위한 식재료의 하나로 꼽힌다.
붉은 팥과 검은 콩에는 눈 건강과 콜레스테롤 억제에 도움이 되는 안토시아닌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다. 특히 검은 콩은 단백질이 풍부해 탄수화물 비율이 높은 밥에서 단백질 비율을 높이는 역할을 하며, 팥에는 쌀밥을 주식으로 할 때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 B1과 나트륨 배출에 효과적인 칼륨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팥에 함유된 칼륨의 양은 바나나의 4배, 쌀의 10배 이상으로 부기 제거와 혈압 강하에도 효과적이다. 이처럼 다양한 영양 성분을 두루 갖춘 팥은 탄수화물이 풍부한 곡물과 함께 섭취하면 곡류의 당질 대사에 꼭 필요한 비타민 B1과 아미노산 등을 보충할 수 있어 영양학적 균형을 기대할 수 있다.
거의 모든 잡곡에는 항당뇨 효능이 있지만, 특히 수수와 기장의 항당뇨와 항암, 항산화 효과는 탁월하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이 두 잡곡은 오곡밥의 잡곡 가운데 혈당 상승을 억제하는 항당뇨 효능이 시중에 판매되는 혈당강하제와 견줄 만큼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곡밥의 찬이 되는 묵은 나물은 지난가을 볕에 말려 저장해둔 취나물, 토란잎, 배춧잎, 호박고지, 박고지, 말린 가지, 말린 버섯, 고사리, 도라지, 시래기, 고구마순 등의 나물을 물에 담가 우려낸 뒤 삶아서 갖은 양념을 하여 참기름이나 들기름에 볶아낸 것이다. 채소는 밭에서 갓 딴 싱싱한 것이 몸에 더 좋을 것 같지만, 의외로 마르는 과정에서 발효되기 때문에 말린 채소의 영양소가 더 풍부하다. 이는 겨울철에도 다양한 나물 반찬을 밥상에 올리고자 했던 우리 선조들의 지혜에서 비롯된 산물로, 비타민과 무기질, 식이섬유를 섭취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동국세시기》에는 ‘박나물, 버섯 등을 말린 것과 대두황권, 순무, 무 등을 묵혀둔다. 이것을 진채라고 한다. 진채식을 먹으면 그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고사리 등에는 해독과 해열 효능이 있다. 또한, 시래기에는 칼슘과 식이섬유가 풍부하게 함유돼 있으며, 콜레스테롤 수치를 감소시키고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는 효능이 있다. 취나물은 기침과 가래에 효과가 좋으며, 도라지는 사포닌이 풍부해 면역력을 높이고 기관지를 건강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호박고지는 비타민 D가 풍부해 골다공증 예방에 좋으며, 칼슘·철·인 등이 골고루 함유돼 있어 임산부, 노약자, 어린이에 좋은 식품으로도 알려져 있다. 고구마순은 비타민이 풍부하다. 이렇듯 묵은 나물에는 생체의 활력을 끌어올리는 데 주요한 영양 성분인 비타민, 무기질 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여름 더위’에 지치지 않는 면역력과 전반적인 건강 개선에 도움을 주는 영양식이다.
정월 대보름날 이른 아침에 가장 먼저 행했던 부럼 깨기는 생밤, 호두, 땅콩 등 비교적 단단한 견과류를 어금니로 단번에 깨물며 한 해 동안 부스럼 없는 피부와 건강한 이를 기원했던 풍습이다.
실제로 생밤은 피부 건강에 도움을 준다. 이는 항산화 물질인 카로티노이드 덕분이다. 밤의 속껍질에 든 이 성분은 피부를 윤택하게 하고 노화를 방지하는 효능이 있다. 또한, 생밤은 면역력을 높여 감기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이에 예부터 ‘하루에 밤 세 알을 먹으면 보약이 필요 없다’고 했다. 밤은 다양한 영양 성분을 품은 천연영양제로, 열량은 다른 견과류와 비교해 낮지만 비타민 B1은 쌀의 4배 정도며, 칼슘의 흡수를 돕는 비타민 D 또한 풍부하게 들었다. 비타민 C 함량은 100g당 12mg으로 견과류 가운데 가장 높다.
땅콩은 지질, 단백질, 탄수화물 등과 무기질, 비타민을 풍부하게 함유한 건강식품이다. 땅콩의 지방 성분은 87%가 올레산, 리놀레산 등 혈관 건강에 이로운 불포화지방산으로, 콜레스테롤을 감소시켜주고 동맥경화 예방에 도움을 준다. 또한, 칼륨과 비타민 B1, B2, 니아신, B5, E, 판토텐산, 엽산 등의 비타민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피로 해소에 좋고 노화를 예방해준다. 땅콩의 붉은 껍질에는 조혈 효능이 있고 철분의 흡수를 돕기 때문에 껍질째 먹는 것이 좋다.
호두는 지방이 약 65%를 차지하는데, 이 중 대부분이 리놀산과 리놀레인산 등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이다. 리놀산은 혈압을 낮추는 효능이 뛰어나 고혈압 예방에 좋다. 호두에는 비타민 B1과 칼슘, 인, 철분도 고루 들어 있어 자주 먹으면 피부가 윤택해지고 노화 방지와 강장에도 두드러진 효과를 나타낸다. 이밖에도 호두는 신장 기능을 튼튼하게 하고 뇌 건강에도 도움을 주어 남녀노소 모두에게 이로운 식품이다.
부럼 깨기 풍습은 단단한 것을 깨물어 치아를 튼튼하게 한다는 인류의 오랜 믿음에서 출발했지만, 무언가를 깨물 때 나는 큰 소리가 질병 등과 같은 좋지 않은 기운을 몰아낸다는 믿음으로 커진 듯하다. 이러한 믿음과 바람이 우리 땅에서 나는 다양한 견과류를 즐기는 건강한 풍습으로 이어져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