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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읽기 좋은 날

2021
43

Vol 46. 팥의 재발견

인문학으로 살펴보는 팥

한식의 신발견

2021/11/29 2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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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팥이 출토되었을 정도로, 팥은 오랜 시간 우리 민족과 함께해온 중요한 작물이었다. 
긴 시간동안 우리의 역사와 어우러진 팥의 이야기를 함께해보자.

글. 정영혜(역사 칼럼니스트)

 

긴 시간 우리 민족과 함께해온 팥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팥을 재배해왔다. 팥의 원산지는 동아시아로 중국, 우리나라, 일본 등에서 재배되었으며 이후 하와이를 거쳐 미국 대륙, 호주, 뉴질랜드, 아프리카 등까지 확산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함경북도 회령군 오동의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최초로 탄화된 팥이 출토되었으며, 양평 팔당 수몰 지구에서는 팥 모양이 찍힌 토기가 발굴되기도 하였다. 이후 백제의 군창자리에서도 녹두와 함께 팥이 출토되었고, 조선시대에는 팥을 조세품목에 포함시키고 공을 세운 사람이나 종친들에게 내리는 하사품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조선 후기의 백과사전인 <규합총서(閨閤叢書)>와 <정조지(鼎俎志)>에는 정월에 오곡밥을 지을 때 팥을 넣었다고 기록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팥은 오랜 시간 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해온 중요한 작물이었다. 특히 우리 조상들은 팥의 붉은 색이 잡귀를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믿었기에 팥을 이용한 조리법이 더욱 발달하였다. 팥을 이용한 대표적인 요리로는 팥밥, 팥죽, 팥떡(시루떡), 팥고물, 팥단자, 팥편, 팥고추장, 팥잎국 등이 있다. 이중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바로 시루떡과 팥죽이다. 
시루떡은 증병(甑餠)이라 하며 고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떡이었다. 찹쌀이나 멥쌀을 가루 내어 떡을 안칠 때 켜를 짓고 켜와 켜 사이에 팥을 고물로 넣어 쪄내어 만들었다. 이때 무를 함께 넣고 찌기도 하였는데 이런 떡을 무시루떡, 나복병(羅蔔餠)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무시루떡은 전통 민요 떡타령에도 시월 상단에 먹는 떡으로 등장한다.
시루떡을 만들 때 팥을 넣는 것은 잡귀가 무서워하는 붉은색 팥을 이용하여 액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우리 조상들은 귀신이 음(陰)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음과 상극인 양(陽),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양인 불과 만나면 귀신이 무서워 달아난다고 믿었다. 불을 상징하는 색이 붉은 색이었기에 붉은 색 음식인 팥 역시 귀신을 쫓을 수 있다고 여기게 되었다. 

 

우리의 풍습에 녹아들다

매년 10월 상달에 추수를 끝낸 후 우리 조상들은 시루떡과 햇과일, 술을 준비해 제사를 지냈다. 특히 집안의 가신에게 가족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의례는 ‘안택(安宅)’이라 하여 더욱 중히 여겼다. 대표적인 가신으로는 집안 최고의 신으로 집안의 모든 일을 관장하는 성주신, 장독대에 위치해 집터를 지켜주고 재복을 주는 터주신, 부뚜막에 위치하며 부엌을 관장하는 조왕신 등이 있었다. 이 밖에도 칠성신, 축신, 마당신, 문신, 삼신할머니 등에게는 따로 제사를 지내지 않고 제물만 놓아두었다고 한다.
이러한 풍습은 조선 헌종 때 학자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잘 나타나 있다. 이에 따르면 “우리 풍속에 정월의 첫 말날(午日)에 증병도신(甑餠禱神)이라 하여 시루떡을 쪄, 일 년 내내 무사태안(無事泰安)을 비는 고사를 지냈는데, 이때에는 붉은 팥시루떡을 두툼한 켜로 찌고, 돼지머리 삶은 것, 북어, 정화수 등을 장소에 따라 구별하여 놓았다.”고 한다.
고사에 사용하는 시루떡은 많은 정성을 들여 만들었다. 반드시 새로 수확한 햅쌀과 팥을 사용했고 별이 떠있는 새벽에 일어나 정성스럽게 시루에 떡을 쪘다. 또한 고사를 지낼 때는 목욕재계를 하고 부정을 타지 않도록 모든 일을 조심스럽게 진행하였다. 행여 부정이 들면 떡이 설  익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밖에 풍년을 기원하는 등신제 때나, 이사를 하거나 사업 등의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함을 받을 때에도 우리 조상들은 시루떡을 만들어 액운을 차단하고 사람들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였다. 
동지 팥죽 역시 시루떡과 마찬가지로 잡귀를 물리치고 액운을 막기 위해 만들어 먹은 대표적인 음식이었다. 동지는 24절기 중 22번째 절기로 1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다. 우리 조상들은 동지를 태양이 다시 살아나는 날로 믿었다. 이 때문에 동지는 작은 설로 여겨졌다. ‘동지 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은 바로 이러한 인식에서 나온 것이었다. 
설날에는 떡국을 먹듯이 동짓날에는 새알심을 넣은 팥죽을 먹었다. 새알심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다고 생각했기에 팥죽을 쑬 때는 먹는 사람의 나이 수만큼 새알심을 넣었다.
이렇게 팥죽을 이용해 잡귀를 물리치는 풍속은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중국 남북조 시대 형초 지방의 세시 풍속을 기록한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따르면 중국의 공공씨(共工氏)에게 재주 없는 아들이 있었는데 이자가 동짓날에 죽어 전염병을 퍼트리는 역귀가 되었다고 한다. 이 역귀는 붉은 색의 팥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역귀를 물리치기 위해 동짓날에 팥죽을 쑤는 풍습이 생겨나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에도 이러한 팥죽의 유래담이 인용되어 있다. 또한 고려시대 이색의 <목은집(牧隱集)>과 이제현의 <익재집(益齋集)>에 동짓날 팥죽을 먹는다는 내용의 시가 실려 있어 이를 통해 동짓날에 팥죽을 먹는 풍습이 고려시대에 이미 대중적으로 퍼져 있었다는 사실도 짐작할 수 있다. 

 


 팥, 안녕을 기원하다

이렇듯 팥죽이 악귀를 예방한다고 믿었던 우리 선조들은 동짓날에 팥죽을 끓여 사당과 집안 곳곳에 놓고 벽과 문판에 뿌리기도 하였다. 이는 시루떡과 마찬가지로 액을 막고 집안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동지는 시기에 따라 일컫는 말이 조금씩 다르다. 초순에 들면 애동지(兒冬至), 중순에 들면 중동지(中冬至), 하순에 들면 노동지(老冬至)라고 불렀다. 중동지와 노동지에는 팥죽을 쑤지만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았다. 애동지에 팥죽을 쑤면 집안의 아이에게 액운이 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애동지에는 팥죽 대신 시루떡을 해먹었다. 
평소 검소하기로 유명했던 조선 영조는 ‘동짓날의 팥죽은 양기의 회생을 위하는 뜻이라 할지라도 이것을 뿌리는 것은 아까우니 이를 없애고 잘못된 풍습을 바로 잡으라’ 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팥죽 먹는 풍습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았기에 동짓날 어머니 묘소에 성묘하고 돌아오는 길에 종로 거리의 걸인들을 불러 모아 팥죽을 먹였다고도 한다.
그러나 어명에도 불구하고 동짓날 팥죽을 먹는 풍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동짓날 외에도 지방에 따라서는 전염병이 유행할 때 팥죽을 끓이고 병마를 쫓기 위해 길에 뿌려두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초상을 치르느라 쇠약해진 상주에게 팥죽을 먹이거나 병상에 오래 누웠던 사람이 회복기에 들었을 때에도 팥죽을 먹였으며, 이사를 가거나 새 집을 지었을 때도 팥죽을 끓여 집안 구석이나 장독대 등에 뿌렸다고 한다. 
이렇듯 팥죽을 쑤어먹는 풍습이 오랫동안 이어진 건 아마도 그 속에 가족의 행복과 평안을 바라는 우리 선조들의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 세계적인 역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요즈음, 건강하고 무탈하게 한해를 보내길 바라는 선조들의 마음을 본받아 가족들과 함께 따뜻한 팥죽 한 그릇을 끓여 먹어 보면 어떨까.

물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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