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읽기 좋은 날
Vol 23. 눈과 입이 즐거운 '대설'과 '동지'
눈(雪)과 입이 즐거운 '대설'과 '동지'
눈 내리면 곳간도 두둑, 겨울이 풍요로워진다!
일 년 중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대설(大雪)과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동지(冬至)는 풍요로운 절기이다. 겨울로 접어들지만 농부들에게는 새해를 맞이할 준비로 한창인 농한기이기 때문이다. 겨우내 먹을 식량을 비축해두는 절기, 그래서 겨울철 곳간은 두둑하다.
눈과 함께 찾아오는 12월의 절기
#대설 #곳간 #곡식 한가득
19세기 중엽 김형수의 『농가십이월속시(農家十二月俗詩)』에는 ‘몸은 비록 한가하나 입은 궁금하네’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한겨울 절기로 농사일은 한가롭지만, 가을 동안 수확한 곡식들이 곳간에 한가득 쌓여 당분간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풍요로운 절기다. 눈 내리는 날 구들장에 모여 앉아 음식을 나눠 먹는 대설. 그 온기에 사르르 눈도 녹아내린다.
#동지 #팥죽 #액운 타파
여름 특히 개와 늑대의 시간에 드리운 어두운 코발트 빛 하늘이 서편 너머로 물러날때 겨드랑이를 가볍게 툭 치듯 들어와 코 끝과 이마 자락을 간지럽히며 사라지는 기분좋은 선들바람이 불어옵니다. 서쪽이라면 하늬바람일텐데 아무래도 산너머서 온 산들바람입니다. 시원하고 가볍게 부는 이 바람이 가을로 접어들면 건들바람이 되면서 아주 조금 바람이 세집니다.
12월의 식재료
한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눈이 내리면, 봄·여름·가을을 견뎌내고 생명이 움튼 자연의 결실이 곳간에 가득하다. 12월까지 펄떡이는 싱싱한 대하부터 계피, 팥, 파래, 굴, 도루묵까지, 겨울이면 생각나는 식재료들도 차고 넘치니 올겨울 식탁도 풍년, 풍년, 풍년이로다.
하나. 맛있어서 펄떡펄떡 '대하'
몸집이 큰 새우라는 뜻의 대하(大蝦)는 9월부터 12월까지 제철이다. 살이 통통히 오르고 맛이 좋은 고급 새우로, 그 인기만큼 국내에서도 많이 양식하고 있다. 이 시기에 먹는 대하는 살이 유독 달고 단백질과 무기질 함량이 높다. 은박지를 얹은 석쇠에 소금을 깔고 구워서 먹는 '소금구이 대하'가 인기이며, 대하 튀김과 구이로 껍질째 먹기도 한다.
둘. 특유의 향에 끌리는 '계피'
세계 3대 향신료 중 하나인 계피는 예부터 약재로 많이 사용해왔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계피가 속을 따뜻하게 하고 혈맥을 잘 통하게 하며 위와 장을 튼튼하게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겨울철에는 계피를 넣은 수정과나 쌍화탕에 함께 넣어 먹기도 한다. 따뜻한 물에 꿀과 계핏가루를 섞어 마시거나 잼처럼 빵에 발라 먹는 등 다채롭게 활용할 수 있다.
셋. 끝없는 맛의 변중주 '팥'
팥은 팔색조 매력을 가진 식재료다. 예부터 많은 요리에 활용되어 왔고, 팥고물과 팥소는 떡, 전통 과자, 빵 등에 사용되며 일본에서는 밤, 칡과 함께 단맛을 내는 3대 식재료로 쓰이고 있다. 동지 팥죽부터 팥 앙금 가득 든 수수부꾸미와 팥찐빵, 뜨끈하게 즐기는 팥칼국수까지, 팥의 무한 변신은 겨울철 입맛을 깨우는 일등공신이다.
넷. 한겨울 파릇파릇 '파래'
가을에서 봄 사이 무성하게 자라는 파래는 새콤달콤하게 무쳐 먹으면 겨울 식탁에 파릇파릇한 싱그러움을 선사한다. 짙은 녹색의 구멍갈파래와 연한 녹색의 홑파래로 나뉘며, 홑파래는 물김치로 구멍갈파래는 멸치젓국으로 무쳐 먹는다. 파래는 날로 먹기도 하고, 산간벽지에서는 건조한 파래를 양념해 먹었으며, 어촌에서는 김치로 담가 먹기도 한다.
다섯. 영양 만점 바다의 우유 '굴'
굴은 굴조개, 석굴, 석화, 어리굴 등 이름도 다양하다. 자연산 굴은 고소한 단맛이 최고지만, 양식 굴과 비교해 영양적인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고 알려져 있다. 굴에는 철, 아연, 구리, 망간 등의 미네랄이 풍부하며 훌륭한 강장식품으로 손꼽힌다. 이처럼 영양학적으로 뛰어난 굴은 '바다의 우유'라고 불리며, 날것을 초장에 찍어 먹기도 하고 굴국, 굴밥, 굴전 등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여섯. 먹어보면 다시 찾는 '도루묵'
바닷물고기인 도루묵은 11~12월이 제철이다. 조선 선조 임금이 임진왜란 피난길에 '묵'이라고 불리는 생선을 맛있게 먹어 '은어'라고 불렀다가, 나중에 다시 먹어 보니 그 맛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하여 도로 '묵'이라 명했다고 전해진다. 도루묵은 비린내가 없어 담백하고 시원해 고춧가루와 양념을 넣어 도루묵찌개로 먹기도 하고 구이, 조림 등으로 활용된다.
눈 내리고 밤이 길어지는 '대설'과 '동지'.
한 끼 두둑하게 나눠 먹으면 더없이 따뜻한 겨울이어도
결코 춥지 않는 절기가 반갑기 그지없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맛, 12월의 음식
팥죽 _ 든든하게 뜨끈하게!
예로부터 팥은 몸 안에 냉기를 몰아 내주고, 몸에 냉기가 사라지면 자연스레 면역력이 올라 감기, 폐렴 등을 예방할 수 있어 '동짓날 팥죽을 먹어야 악귀를 쫓아내고 액운을 막을 수 있다'라고 전해져 왔다. 나이 수대로 새알심을 먹어야 운이 좋다고 전해져왔다. 붉은팥을 한 번 삶아 물을 따라 낸 후 다시 삶아 거른 팥물에 멥쌀과 찹쌀가루를 넣고 끓이며, 소금과 설탕으로 적당하게 간을 한다. 팥죽은 약한 불에 서서히 끓여야 붉은색이 더 진해지며, 기호에 따라 찹쌀가루로 동글동글 새알심을 만들어 팥죽에 넣어 먹는다.
감귤단자 _ 쫀득하게 향긋하게!
단자는 찹쌀가루를 쪄서 치댄 뒤 팥이나, 밤, 과일 등으로 소를 만들어 동그랗게 빚고 고물을 묻힌 떡을 말한다. 감귤단자는 고물에 귤시럽과 귤피조림 등을 넣어 귤의 향미가 가득한 전통 떡이다. 찹쌀가루와 귤소, 거피팥고물, 귤시럽, 귤피조림, 물엿, 흰팥고물·찰떡 반죽 등을 넣어 찹쌀의 쫀득한 식감과 새콤한 귤 향이 가득해 고급 한식 디저트로 손꼽힌다.
글 피옥희 에디터 사진 스튜디오트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