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읽기 좋은 날
Vol 10. 육지와 바다, 민물의 3중주 충청남도
땅과 민물, 바다의 3중주, 충청남도 ⑩
향토 미식 로드 _ 충남 장 문화
전통으로 익어가는 충청남도 장(醬) 문화
간장, 고추장, 된장, 청국장 등 ‘간’을 조율하는 ‘장’의 기원은 약 2천 년 전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부터 가가호호 장을 담그는 일은 한 해 농사만큼 중요한 연례행사였다. 늦가을이 찾아오면 콩을 삶아 메주를 빚고 겨우내 정성껏 띄워, 이듬해 음력 정월부터 삼월 사이 날을 골라 장을 담근다. 그 전까지 부정한 행동은 삼가고, 당일엔 목욕재계로 심신을 가다듬는 게 기본. 이렇게 경건한 준비가 끝나면 마침내 항아리 앞에 선다. 장을 담은 항아리엔 금줄을 두르고, 종이 버선본을 거꾸로 붙인다. 이어 기다림의 시간. 비와 눈을 막고 해와 바람을 쪼이며 수백, 수천 번 장독대를 오간다. 인내와 정성이 뒤따르는 숙성 과정. 사람과 자연이 함께 빚은 그 맛이 묵직하게 피어오르면 평안한 한해를 약속한다. 전국으로 뻗어나간 ‘장(醬) 문화’는 뿌리는 같지만 지역별로 재료나 비율, 제법 등에서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특히 충청남도에선 ‘즙장’으로도 불리는 ‘속성 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예산의 집장, 천안의 빠금장, 보령의 쩜장 등이 그것. 여기에 토종 팥과 토종 콩으로 사라져가던 조선시대의 팥장을 재현한 홍성의 팥장도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둔 우리나라 대표 식문화. 충남의 장맛을 따라가 본다.
비와 눈을 막고 해와 바람을 쪼이며 수백, 수천 번 장독대를 오간다
인내와 정성이 뒤따르는 숙성 과정
사람과 자연이 함께 빚은 그 맛이 묵직하게 피어오르면
평안한 한해를 약속한다
반가의 고급 양념, ‘집장’
여름철에 즐겨 먹은 속성 장으로, 기록으로는 16세기 말엽 「주방문」에 처음으로 등장하고, 「증보산림경제」엔 집장 만드는 법이 상세히 실려 있다. 특히 2014년엔 예산 집장이 ‘맛의 방주’에 오르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예산에서 집장은 음력 7월 15~20일쯤, 백중이 지난 후 담근다. 집장용 메주를 만들려면 불린 보리쌀은 시루에 찌고, 불린 콩은 무르게 삶아 3:7의 비율로 섞는다. 삶은 콩을 절구에 넣어 찧은 다음 보리쌀을 더해 함께 찧는 것이 1단계. 주먹만 한 크기로 메주를 빚은 후 지푸라기와 함께 켜켜이 놓고 그늘진 곳에서 띄운다. 시간이 지나 메주에 노란 곰팡이가 피면 잘 말려 곱게 빻아 찹쌀로 무르게 지은 밥을 섞어 소금으로 간을 한다. 이때 다소 될 경우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끓인 물을 더한다. 다음으로 새우와 고기, 오이, 무 등을 절여 수분을 제거한 뒤, 항아리에 장과 이들 재료를 차곡차곡 쌓아 감잎을 두껍게 덮는다. 이렇게 마무리를 장식한 감잎은 수분을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속에 항아리를 3분의 2 정도 잠기게 두어 사흘 정도 일정한 온도로 유지시킨다. 대개 완성된 집장을 먹기까지 1주일 정도 소요. 요즘엔 항아리째 밥솥에 넣어 3-4일 정도 찌는 방식으로 더 빨리 발효시키기도 한다.
* 토담골 *
A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금치길 216-26 T 041-337-0357, 010-2019-0357
보리밥으로 더 구수한 ‘보리 막장’
간장(진간장)을 뜨고 남은 보통 된장과 달리, ‘막장’은 메주를 가루로 빻은 다음 소금물로 질척하게 말아 바로 먹을 수 있게 담근 장이다. 즉 ‘막’ 담가 먹는다고 막장이라 불렀다. 막장용 메주는 일반적으로 장 담글 때 쓰는 보통 메주를 쓰기도 하지만, 메주콩에 곡식가루를 섞은 뒤 따로 막장 메주를 조그맣게 만들어 띄워 쓰기도 한다. 지역에 따라 메주가루를 버무릴 때 찹쌀, 멥쌀, 보리, 밀가루 등 섞는 재료가 달라지는데, 충남 지역에선 보리로 지은 밥을 섞어 ‘보리 막장’을 해 먹었다. 고춧가루를 섞어 한데 버무린 다음 소금으로 간을 하면 완성. 고운 색을 내기 위해 고추씨 빻은 걸 넣기도 한다. 담근 지 열흘 정도 지나면 먹을 수 있는데, 이때는 미리 간을 약하게 해야 한다. 보리 막장은 고소하면서도 단맛이 많은 것이 특징. 보통 10개월 정도 지나면 최고의 맛을 내기 시작한다.
* 이정숙전통음식연구원 내포수라간(조선왕조 궁중음식 이수자) *
A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상하북길 96 T 041-337-0747
토종 팥으로 메주를 쑤는 ‘팥장’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지난해 12월 홍주발효식품의 이경자 대표는 자칫 사라질 뻔한 ‘전통 팥장’을 ‘맛의 방주’에 등재시켰다. 충남 공주 출신인 그녀는 어릴 적 할머니가 해주시던 팥장 맛을 잊지 못해 「색경」을 바탕으로 「규합총서」와 「조선요리제법」,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등을 연구하며 팥장을 원형대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메주의 주재료로 토종 종자인 ‘예팥’을 쓰는 것이 특징. 콩도 토종 종자인 선비잡이콩을 쓴다. 제법은 「규합총서」의 기록을 따랐는데, 쌀로 만든 백설기를 삶은 팥, 콩과 함께 섞어 도넛 모양으로 메주를 빚는다. 이후 황토방에서 15일 정도 말린 다음 가루를 내어 소금과 간장, 표고버섯가루 등과 반죽해 60일 정도 항아리에서 숙성시킨다. 이때 양지바른 곳에 두세 달 더 두면 장맛은 더욱 깊어진다. 일반 된장보다 훨씬 달큰하고 고소하며, 배추와 감자, 호박 등을 넣어 찌개를 끓이거나 쌈장으로 먹어도 좋고, 밥에 넣어 쓱쓱 비벼도 별미다.
* 홍주발효식품 *
A 충청남도 홍성군 금마면 충서로1932번길 20 T 041-634-1479
동치미 국물로 숙성시킨 저염 된장 ‘빠금장’
천안의 대표적인 속성 장으로 메주를 빻아 만들어 ‘빠금장’ 혹은 ‘빠개장’으로도 불렸다. 된장이 떨어질 즈음인 이른 봄, 메주가루를 동치미 국물에 걸쭉하게 개어 항아리에 담아 부뚜막에 올려 두고, 2-3일 숙성시킨 후 고춧가루와 소금으로 간해 쌈장이나 찌개로 끓여 먹었다. 영양학적인 면에서 기존의 재래 된장보다 여러모로 뛰어난데, 간장을 빼지 않은 메주를 사용해 콩의 풍부한 단백질이 그대로 살아 있고, 메주를 소금물에 담그지 않아 염분이 적어 각종 성인병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맛은 된장보다 덜 짜고 더 부드러우며, 군내도 덜 나는 편. 집안에서 장을 발효시키던 부뚜막이 사라지면서 점차 모습을 감춘 빠금장은 백석문화대학에서 ‘저염 기능성 된장 제조 방법’으로 특허를 등록하고 판매에 성공하면서 시중에서도 만나볼 수 있게 됐다.
* 백석웰빙식품 *
A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문암로 58 백석문화대학교 T 041-550-2110
에디터 전채련, 정민아 사진 윤동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