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읽기 좋은 날
Vol 10. 육지와 바다, 민물의 3중주 충청남도
땅과 민물, 바다의 3중주, 충청남도 ⑥
향토 미식 로드 _ 민물 어죽
서민들의 칼칼한 보양식 민물 어죽

이름 그대로 민물고기로 만든 죽이다. 비리지 않을까? 어죽을 처음 만나는 이들은 지레 겁부터 먹는다. 하지만 한 번만 맛보면 어죽의 매력에 푹 빠져 버린다. 매콤하고 걸쭉한 국물 사이로 고기 살이 부드럽게 씹히고, 쫀득한 수제비와 국수 면발이 식감을 더해준다. 비릿함 때문에 어류 자체를 멀리했던 사람에겐 더욱 반가운 보양식이 아닐 수 없다.


붕어, 메기, 쏘가리, 빠가사리, 송사리…. 때에 따라 잡히는 각종 민물고기를 넣고 끓이는 어죽은 예부터 서민들의 보양식이었다. 농촌에서는 날이 더워지면 논밭 일을 일찍 끝내고 동네 근처의 개울가에서 물고기를 잡았다. 그 자리에서 솥을 걸고 잡은 물고기와 밭에서 따온 각종 채소를 넣고 끓였다. 이렇게 즉석에서 만들어 먹던 음식이 어죽. 지역마다 어죽의 재료와 조리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어죽이 대중화되어 본격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곳은 바로 예산이다.

매콤하고 걸쭉한 국물 사이로
고기 살이 부드럽게 씹히고
쫀득한 수제비와 국수 면발이 식감을 더해준다
예산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저수지인 예당저수지가 있다. 저수지가 생기기 전 대흥면 노동리에는 작은 산이 있었는데 ‘딴 곳에서 떠내려 온 산’이라고 해서 ‘딴산’이라고 불렀다. 딴산 사람들은 냇가에서 잡힌 민물고기로 줄곧 어죽을 끓여 먹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에 저수지가 착공되자 많은 서민이 공사에 강제 투입됐다. 배정된 식량마저 중간에 빼돌리는 일본인들 때문에 항상 먹을 게 부족했던 인부들은 딴산 사람들이 즐겨 먹던 어죽으로 주린 배를 채웠다. 이 어죽의 맛이 너무 좋은 나머지 멀리까지 입소문이 퍼졌고 예당저수지 부근엔 민물어죽을 파는 식당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에 저수지가 착공되자 서민들이 공사에 강제 투입됐다
항상 먹을 게 부족했던 인부들은
딴산 사람들이 즐겨 먹던 어죽으로 주린 배를 채웠다
상류의 집수 면적이 넓어 민물고기의 먹이가 풍부하게 들어오는 예당저수지는 중부권 최고의 낚시터로 손꼽혀왔다. 예당저수지 주변 식당들은 이곳에서 잡힌 통통한 민물고기로 어죽과 매운탕을 만들어 팔고 있다. 그중 <예가민물>은 예산 토박이인 부부가 14년간 운영해온 민물고기 요리 전문점. 예당저수지에서 잡힌 자연산 민물고기와 국내산 식재료만을 고집한다.
어죽에 들어가는 물고기는 계절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주로 사용하는 건 붕어, 메기, 빠가사리 등이다. 이 고기들의 내장만 빼고 통째로 여섯 시간을 끓여 육수를 만든다. 옛날에는 물고기 육수만을 사용해 어죽을 만들었지만, 이 집은 마른 새우와 양파 껍질, 파 뿌리, 표고버섯, 생강 등을 끓인 채소 육수도 함께 섞는다.


어죽과 함께 나오는 충청도식 동치미 ‘짠무’도 별미
시원하고 아삭한 짠무는 어죽으로 얼얼해진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어준다

이렇게 만든 육수에 뼈만 건져내고 태양초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등을 넣어 간을 맞춘다. 고기 살은 매콤한 양념과 함께 풀어지면서 더 잘게 부스러져 국물로 완성된다. 여기에 찹쌀과 국수, 수제비를 넣어 걸쭉하게 끓인 후 마지막엔 들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린다. 커다란 그릇에 인심 좋게 담아낸 어죽은 단돈 7천원. 두 사람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이 집에서 어죽과 함께 나오는 밑반찬인 충청도식 동치미 ‘짠무’도 별미다. 김장철에 무와 소금을 버무려 1년 정도 숙성시킨 뒤 물에 섞어 먹는다. 시원하고 아삭한 짠무는 어죽으로 얼얼해진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어준다. 얼큰한 국물과 짠무를 번갈아 먹는 사이 죽이 입으로 술술 넘어가 어느새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내게 된다.

Where to eat?
예가 민물
A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 예당관광로 31
T 041-333-1479
H 10:00-21:00

Tip 다른 지역의 어죽은 뭐가 달라?
어죽은 지역에 따라 끓이는 방식도 조금씩 다르고 재료도 차이가 난다. 충북 옥천과 영동은 어죽을 ‘생선국수’로, 경남 함양은 ‘어탕국수’로 부른다. 특히 민물고기를 뼈째 갈아 만든 경남의 어탕국수는 고추와 산초가루를 듬뿍 뿌려 칼칼한 맛이 강하다. 전남에서도 어죽을 해 먹었는데, 된장으로 간을 하고 마지막에 쑥갓을 넣어 비린내를 잡았다. 해안가 사람들은 바다 생선으로 어죽을 끓여 먹었다. 제주도의 옥돔죽, 고등어죽이 대표적이다.
에디터 정민아 사진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