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전하는 온라인 매거진
Vol 9. 남해 품은 食의 바다, 경상남도
전통으로 낚는 고기잡이

<<단원풍속화첩>> 중 <고기잡이> _ 김홍도, 18세기 후반, 종이에 담채, 27.0X22.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여유로운 조선시대 어부들의 몸짓
김홍도의 <고기잡이>는 18세기 어촌의 풍경이 잘 살아 있다. 울타리처럼 보이는 것이 ‘울짱’으로, 주로 떡갈나무나 소나무를 써 물이 얕은 바다나 산발치가 바다로 들어간 섬의 모래벌판 가장자리에 빙 둘러 세웠다. 울짱의 귀퉁이엔 물살에 따라 물고기가 들어가긴 해도 나오지 못하는 임통을 설치하고, 조수물이 들어오면 물고기가 그 속에 갇히도록 했다. 이후 물고기가 가득할 때쯤 어부들은 배를 나눠 타고 임통 안으로 들어가 물고기를 떠서 배에 저장했다. 이것이 대표적인 조선시대의 고기잡이로, 김홍도는 역사적인 사료 못지않게 과정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그려내었다.

어부들은 조기와 청어 등을 잡기 위해 바다에 ‘울짱’ 즉 ‘주목망(柱木網)’을 설치했다. 그림을 보면 주목망 안쪽에서 어부 2명이 소쿠리에 담은 생선을 바깥쪽 배에 올라탄 이에게 건네주고 있고, 이 배엔 꽤 큰 항아리가 2개나 실려 있다. 또 바로 옆으로 항아리와 솥단지를 실은 배 한 척이 시야에 들어온다. 아마도 한 항아리엔 소금이 들어 있을 테다. 잡은 생선을 바로 소금에 절여 젓갈을 담기 위한 것. 문헌에 따르면 당시엔 그 자리에서 즉시 담은 젓갈을 최고로 쳤다고 한다. 실제로 젓갈은 민중의 겨우살이에 힘을 보태는 필수 식품으로,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한편 그림 맨 앞쪽의 움막을 친 배 안에선 어부들이 통발을 수리하며 쉬고 있다. 아마도 앞선 작업을 모두 마쳤거나 새로운 고기잡이를 준비하는 이들일 게다.


서해안에서 맹활약한 어살과 돌살
지금은 생선이라 하면 소금기 머금은 바닷고기를 떠올리지만, 조선 전기 이후 생선은 잉어, 붕어 쏘가리 같은 민물고기를 칭했다. 식생활에서 해산물보단 담수어에 의지했고, 바다와 강이 만나는 기수(汽水)의 생선인 숭어와 웅어, 알을 낳기 위해 강으로 올라오는 연어 등이 주요 포획 대상이었다. 어선이 발달하지 못해 뭍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서만 이뤄지는 내만 어업이 주로 행해졌다.
특히 서해안은 갯벌이 잘 발달한 건 물론 리아스식 해안이 만을 형성해 연안 어업에 탁월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즉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어살’이나 ‘돌살’, 나무를 바다에 세워 고기를 잡았다. 그중 ‘어량’은 하천을 토석으로 가로막은 다음 일부만 틔워 물을 흐르게 해, 발을 세운 뒤 물 흐름에 따라 내려오는 어류를 잡는 것. 이때 어량을 바다에 설치하면 ‘어살’이나 ‘돌살’이라 불렀다.

민어, 숭어, 조기, 청어 등 조수 차로 들어오는 내만의 바닷고기는 모두 이렇게 포획되었다. 조선시대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서천과 태안, 남포 지역이 어살을 만드는 살대 생산 지역임을 기록하고 있다. 즉 어획에서 어살의 중요성을 암시하고, 서해안의 경우 대나무로 어살을 만들었음을 드러낸다.
대개 서해안의 어살과 돌살은 국가 소유로, 이곳의 물고기는 중국에 보내는 선물로 삼았다. 특히 수심이 얕고 만이 잘 발달해 어살 설치가 쉬울 뿐 아니라, 뱃길도 훌륭해 한양에 보낼 수산물 보급처였다. 이렇듯 어살과 주목망으로 잡은 어종은 준치, 민어, 상어, 삼치, 홍어, 연어, 농어, 대구, 오징어, 숭어, 문어, 조기, 청어, 밴댕이, 대하 등 다양한 어종으로 알려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