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의 여왕'으로 불리는 백합. 이름처럼 희고 깨끗하다. 백합이라 부르는 이유는 껍데기에 나이테와 함께 1백가지 무늬가 있기 때문. 껍데기 안에 숨은 조갯살은 흔히 굴에 비견될 정도로 우윳빛에 육질이 부드럽고 비린내가 적어 호불호 없이 인기가 좋다. 특히 자연산 백합을 채취해 만드는 사천식 백합죽은 신선하고 고소한 맛으로 정평이 났다.

따뜻한 봄이 오면 바다 밑 모래 속에 숨어 있던
백합이 하나둘씩 고개를 내민다. 바람이 없는 날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백합을 잡았고, 바람이 많은
날은 바닷물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백합을 캤다.

백합은 사천시 선진마을에서 주로 잡힌다. 따뜻한 봄이 오면 바다 밑 모래 속에 숨어 있던 백합이 하나둘씩 고개를 내민다. 대대로 고기나 조개를 잡으면서 살아온 용현면 선진마을 사람들. 바람이 없는 날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백합을 잡았고, 바람이 많은 날엔 바닷물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백합을 캤다.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갯벌에 나가면 발에 밟힐 정도로 많았던 백합과 바지락. 잡은 조개는 대부분 진주나 삼천포항으로 나가 팔았다. 큰 것은 구이나 회로, 작은 건 죽으로 끓여 먹었다.

이곳 사람들은 그나마 백합과 바지락이 있어
보릿고개의 절실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배고픈 시기를 견디게 해준 바다의 선물이었던 셈.

과거 한국의 봄은 반가운 계절이 아니었다. 겨우내 묵혀 놓은 곡식이 바닥을 보여 험난한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나마 백합과 바지락이 있어 보릿고개의 절실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배고픈 시기를 견디게 해준 바다의 선물이었던 셈. 하지만 최근 들어 주변 환경의 영향으로 백합이 점차 모습을 감추기 시작해, 지금은 귀한 조개로 취급될 만큼 잘 잡히지 않는다.

백합죽은 엄마가 끓여주는 죽처럼 소박하면서도 따뜻하다. 
소금이나 간장, 조미료 등을 일체 쓰지 않고 
백합에서 우러난 염분만으로 간하는 것이 비법 아닌 비법이다

선진마을에 그 많았던 백합 요리 식당도 하나둘 문을 닫고 현재 남은 건 35년 전통의 <해원장 횟집>뿐. 사천만의 자연산 백합으로 만든 죽과 구이, 회를 한결같은 맛으로 선보이고 있다. 2대를 이어 운영해 사천 백합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동네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추억과도 같은 식당이다.

<해원장 횟집>의 백합죽은 엄마가 끓여주는 죽처럼 소박하면서도 따뜻하다. 조리 방법은 간단하다. 불린 찹쌀에 백합살을 다져 넣고 인삼, 대추, 잣, 밤, 마늘 등과 함께 끓이다 마지막에 백합을 껍질째 넣고 다시 끓여주면 완성. 소금이나 간장, 조미료 등을 일체 쓰지 않고 백합에서 우러난 염분만으로 간하는 것이 비법 아닌 비법이다. 백합회는 1월에서 5월 초 사이에만 맛볼 수 있는데 봄에 회로 먹으면 사각사각 씹히는 부드러운 육질에, 살짝 달콤하면서도 짭조름한 맛이 꽤 별미다.

백합회는 1월에서 5월 초 사이에만 맛볼 수 있는데 
봄에 회로 먹으면 사각사각 씹히는 부드러운 육질에, 
살짝 달콤하면서도 짭조름한 맛이 꽤 별미다.

제철인 봄이 지나고 여름으로 넘어가면 백합의 물량이 줄어든다. 백합구이와 회는 15마리에 5만원. 백합이 귀해진 만큼 가격도 꽤 올랐지만, 쫄깃하고 고소한 자연산 백합 고유의 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꾸준히 이곳을 찾는다.

Where to Eat?
해원장 횟집
A 경상남도 사천시 용현면 선진공원길 487
T 055-854-4433
H 11:00-21:00

에디터 정민아  사진 윤동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