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읽기 좋은 날
Vol 8. 자연 그래도 제주食
자연 그대로 제주食 ⑧
향토 미식 로드 _ 갈치국
영롱한 은빛 비늘의 위용 갈치국
생선으로 국을 끓이는 건 알았지만, 구이나 조림으로 먹는 은갈치를 국으로 끓일 줄은 몰랐다. 심지어 육수를 우리듯 오랫동안 끓이지도 않는다. 잡내를 잡는 양념이나 향신료도 없다. 신선한 재료로 최소한의 조리법과 조리시간이 만드는 자연주의. 갈치국은 재료 본연의 맛을 정직하게 지켜 오히려 더 색깔 있는 제주 향토 음식이다.
신선한 재료로 최소한의 조리법과 조리시간이 만드는 자연주의.
갈치국은 재료 본연의 맛을 정직하게 지켜
오히려 더 색깔 있는 제주 향토 음식이다
갓 잡은 걸 반나절 내에 조리하는 것이 원칙.
육지에선 어패류로 국을 끓일 때 대개 무를 넣는데,
제주에선 무뿐 아니라 배추와 호박 등
텃밭에서 키운 제철 채소를 아낌없이 넣었다
예로부터 제주에선 귀한 손님이 올 때면 싱싱한 갈치국을 대접했다. 군더더기 없이 맑게 끓여 연포탕이나 장국 같은 비주얼. 맛의 처음과 끝을 좌우하는 건 갈치의 선도로, 깔끔하면서도 시원한 국물 맛이 만인의 기호를 사로잡았다. 갓 잡은 걸 반나절 내에 조리하는 것이 원칙. 튀어오를 듯 탱탱한 갈치살은 천하일미가 따로 없었다. 육지에선 어패류로 국을 끓일 때 대개 무를 넣는데, 제주에선 무뿐 아니라 배추와 호박 등 텃밭에서 키운 제철 채소를 아낌없이 넣었다. 이때 갈치 비린내를 걱정하는 건 오로지 육지 사람의 관점. 유통이 빠르면 비린내가 날 틈이 없다.
매일 아침 제주 동문 재래시장에 나가
‘당일바리(그날 잡은 것)’로 최상급 은갈치만 들여오는데,
이렇게 엄선한 선도 ‘갑’ 갈치는 내장을 쏘옥 빼낸 뒤
소금을 섞은 얼음물에 씻어 또 한 차례 선도를 지킨다
<한라식당>은 30여 년 역사를 가진 갈치국 전문 식당. 제주도민 사이에서 유명세가 상당할 만큼 주인아주머니의 자부심이 하늘을 찌른다. 매일 아침 제주 동문 재래시장에 나가 ‘당일바리(그날 잡은 것)’로 최상급 은갈치만 들여오는데, 갈치 상태를 매우 까다롭게 살펴 시장 상인들도 혀를 내두른다. 이렇게 엄선한 선도 ‘갑’ 갈치는 내장을 쏘옥 빼낸 뒤 소금을 섞은 얼음물에 씻어 또 한 차례 선도를 지킨다.
그때 시선을 빼앗긴 갈치국 한 그릇.
탐스럽게 담긴 국물 위로 은빛 비늘이 떠오르는데
신비로운 분위기마저 자아낸다.
단 5분이라도 냉동을 거치면 나타날 수 없는 현상.
그때서야 온 신경을 기울여 국물의 결을 맛본다
사실 조리 과정은 순식간에 지나갈 만큼 단순하다. 물을 냄비에 붓고, 호박과 배추, 갈치를 넣어 팔팔 끓이면 끝. 소금 간을 하면서 매운 고추를 더하면 바로 손님상에 나갈 수 있다. 아주머니 옆에 딱 붙어 여러 차례 지켜봐도 특별한 비법은 전무하다. 단 건더기는 꽤 푸짐하다. 그때 시선을 빼앗긴 갈치국 한 그릇. 탐스럽게 담긴 국물 위로 은빛 비늘이 떠오르는데 신비로운 분위기마저 자아낸다. 단 5분이라도 냉동을 거치면 나타날 수 없는 현상. 그때서야 온 신경을 기울여 국물의 결을 맛본다. 첫맛은 담백하면서도 시원해 고춧가루 없는 매운탕을 닮았고, 이어 칼칼함이 입속을 진동시키며 맴도는데 이내 빠르게 자취를 감춰 깨끗한 끝맛으로 마무리된다. 쭉 뻗은 고속도로를 달려 나가는 기분. 자리젓을 얹어 밥 한술을 뜨면 소주 생각이 간절해진다. 물론 전날 얼큰하게 과음한 후 해장국으로도 그만이다.
Where to Eat?
한라식당
A 제주도 제주시 광양9길 19
T 064-758-8301
H 매일 08:00-19:00(첫째, 셋째 일요일 휴무)
에디터 전채련 사진 윤동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