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읽기 좋은 날
Vol 8. 자연 그래도 제주食
자연 그대로 제주食 ②
향토 미식 로드 _ 제주 콩국
몽글몽글 씹히는 고소함 제주 콩국

'콩국' 하면 대개 여름에 먹는 시원한 콩국수나 냉콩국을 떠올린다. 하지만 제주의 콩국은 다르다. 그 옛날 제주 사람이 겨울에 즐겨 먹은 뜨끈뜨끈한 국이다. 푸른 콩(청태) 가루와 약간의 배추나 무만 있으면 간단히 끓일 수 있어 먹을거리가 없던 시절 꽤 단골 메뉴였다. 특히 콩국은 제주 중산간 지역에 살던 사람에겐 없어서는 안 될 음식. 이 지역은 한라산 정상보단 낮고 제주 바다보단 높아 위쪽 들녘이란 뜻으로 '웃뜨르'라고 불린다.
바닷가 주변에 사는 사람은 바다에서 나는 걸 먹으면 됐지만, 웃뜨르 사람은 메마른 돌밭에서 메밀과 보리를 일구며 힘겹게 살아야 했다. 그나마도 먹을거리를 구하기 힘든 겨울철엔 늦가을에 수확한 푸른 콩을 가을볕에 잘 말려 겨우내 두고두고 국으로 끓여 먹었다. 추운 날 단백질을 보충하는 데 이만한 음식이 없었다.

먹을거리를 구하기 힘든 겨울철엔
늦가을에 수확한 푸른 콩을 가을볕에 잘 말려
겨우내 두고두고 국으로 끓여 먹었다.
제주 콩국의 조리법은 육지 콩국에 비해 단순한 편이다. 무와 배추를 넣고 끓인 물에 날콩가루 반죽을 조심스레 떨어뜨린다. 이때 주의할 점은 절대 저으면 안 된다는 것. 국자로 저어버리면 콩가루가 물에 풀어져 콩물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맛이 현저히 떨어진다. 젓지 않고 은근한 불에 끓여야 몽글몽글 뭉친 콩가루 덩어리가 둥둥 떠오른다. 흡사 비지 덩어리 같기도 하다. 끓는 물이 울컥울컥 넘칠 것 같으면 국자로 살짝 꾹꾹 눌러준다. 어떤 집에선 국물이 끓어 터지는 공간에 뜯은 배춧잎 조각을 조심조심 넣기도 한다. 이후 소금 간을 해 끓여내면 완성. 퍽퍽함을 없애려 마지막에 식용유를 조금 넣기도 한다.


젓지 않고 은근한 불에 끓여야
몽글몽글 뭉친 콩가루 덩어리가 둥둥 떠오른다.
흡사 비지 덩어리 같기도 하다.


콩국은 조리법이 단순한 다른 제주 음식에 비하면 약간 까다롭다. 약한 불로 뭉근하게 오래 끓여야 하기 때문. 오래 끓일수록 진하고 구수한 콩 맛이 살아난다. 하지만 덩어리가 풀어지지 않도록 뭉근하게 끓이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제주 여인들 사이에선 '미운 며느리 욕하고 싶을 때 끓이라고 하는 국'으로도 알려져 있다.
콩국은 영양학적으로 가치가 높은 음식이기도 하다. 콩을 씻을 때 거품이 나는 이유가 사포닌 성분 때문. 인삼에 들어 있는 주성분으로 알려진 사포닌은 항암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피를 맑게 해주기도 한다. 담백한 콩국은 양껏 먹어도 속이 편하고 소화가 잘된다. 변덕스러운 날씨 속 척박한 땅을 일구느라 몸이 허해진 웃뜨르 사람을 위한 '영양 만점 솔 푸드'임에 틀림없다.


몽글몽글 뭉쳐진 콩 한 덩이를 떠먹어 보니,
비지보다 부드럽고 촉촉하면서도
두부처럼 고소한 감칠맛.

10여 개 오름으로 둘러싸인 제주의 대표적인 중산간 지대 명도암 마을엔 <명도암 수다뜰>이 있다. 제주 토종 푸른 콩으로 만든 콩국, 두부, 된장 비지전 등을 맛볼 수 있는 곳. 특히 향토 방식 그대로 만든 콩국은 담백하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몽글몽글 뭉쳐진 콩 한 덩이를 떠먹어 보니, 비지보다 부드럽고 촉촉하면서도 두부처럼 고소한 감칠맛. 육지 콩국은 후루룩 마셔버리지만, 제주 콩국은 콩가루 덩어리를 씹으며 감칠맛을 음미하게 된다. 밥을 한 덩이 퍼 국에 말아도 좋다.
콩국 정식을 주문하면, 콩국을 포함해 제주 청정 식재료로 만든 찬으로 차린 푸짐한 한상을 맛볼 수 있다. 모두 직접 재배한 채소들에 집에서 담근 간장과 매실 효소를 넣어 맛을 냈다. 푸른 콩을 곱게 갈아 지글지글 부친 비지전은 고기 뺨치게 고소한 맛이 일품. 아삭아삭한 채소와 부드러운 푸른 콩 두부의 조화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Where to Eat?
명도암 수다뜰
A 제주도 제주시 명림로 164
T 064-723-2722
H 09:30-18:30

Tip 1. 제주와 육지의 콩국은 뭐가 달라?
육지의 콩국은 주로 백태(노란 콩)로 만든다. 백태는 된장과 두부를 만들 때 쓰는 콩. 제주의 콩국은 잘 말린 날콩을 갈아 쓰지만, 육지에선 물에 불린 콩을 삶은 후 갈아서 만든다. 콩국은 지역에 따라 들어가는 재료가 조금씩 다르다. 질 좋은 수수가 많이 나는 황해도 지역은 쫄깃한 수수경단을 만들어 콩국에 띄웠고, 경상도에선 우뭇가사리로 만든 묵을 국수 모양으로 잘게 썰어 넣었다. 또 최근 육지에서 끓이는 콩국은 기호에 따라 깨나 잣, 땅콩, 호두 등을 넣어 만들기도 하고 검은콩과 검은깨를 사용하기도 한다.
에디터 정민아 사진 강현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