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읽기 좋은 날
Vol 7. 소박한 낭만 밥상, 강원도
소박한 낭만 밥상, 강원도 ②
향토 미식 로드 _ 춘천 막국수
춘궁기 먹거리에서 일품 요리로 춘천 막국수
'메밀'이 주인공인 막국수는 사실 이북 음식이었다. 6·25 전쟁 통에 수많은 북한 출신 피난민이 춘천과 강릉, 속초 등으로 힘겹게 내려왔고, 팍팍한 강원도 땅에선 삼시세끼는커녕 쌀 한 톨 얻기도 어려웠다. 이때 구세주처럼 등장한 기운 센 구황작물. 그중 메밀은 건조한 땅에서도 싹이 잘 트고, 기후에 대한 적응력도 강해 실패할 리 없는 작물이었다. 여기에 생육 기간도 60∼100일로 짧아 빠른 시일 내에 많은 수확량을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탄생한 ‘보물 같은’ 메밀 막국수. 허기질 때면 언제든지 ‘막’ 해먹을 수 있는 소박한 향토 음식이 되어주었다.
본래 자극적인 양념 없이 구수하고 담백한 맛이 특징.
젓갈이나 고기, 마늘, 파 등도 거의 쓰지 않았다.
전통적인 막국수 레시피는 요새로 치면 품은 좀 들지만 조리법은 간단하다. 껍질을 벗기지 않은 메밀을 맷돌로 갈아 가루로 만들고, 뜨거운 물로 익반죽해 칼로 툭툭 썰어 면을 뽑는다. 끓는 물에 바로 면을 삶아 찬물에 식힌 뒤 동치미나 맑은 김칫국물을 부으면 완성. 잘게 썬 김치나 오이를 고명으로 얹으면 끼니는 물론 겨울날 밤참으로도 그만이었다. 본래 자극적인 양념 없이 구수하고 담백한 맛이 특징. 젓갈이나 고기, 마늘, 파 등도 거의 쓰지 않았다.
춘천 막국수라면 탈피하지 않은 메밀 고유의
거무튀튀한 면 색깔이 아이덴티티.
요즘은 메밀껍질을 벗겨 엷은 잿빛이 도는 흰색에 가깝다
막국수의 본고장은 춘천. 하지만 원조 논란이 무색하게 홍천, 강릉, 정선 등 강원도 전 지역으로 막국수집이 뻗어나가 비교해보는 맛도 있다. ‘춘천 막국수’라면 탈피하지 않은 메밀 고유의 거무튀튀한 면 색깔이 포인트. 하지만 요즘은 까끌까끌한 식감이 호불호가 갈려 대개 메밀껍질을 벗겨 쓴다. 즉 이제 ‘진짜’는 엷은 잿빛이 도는 흰색에 가깝다. 또 춘천에선 막국수의 재료 함량을 메밀 80%, 전분 20%로 유지하는데 강원대학교 메밀학회 회장이 밝힌 황금비율로 고소한 맛과 툭툭 끊기는 식감이 일품이다.
<별당 막국수>는 푹 고아낸 사골 육수를 쓰는 집.
커다란 들통에 사골과 무, 멸치, 양파, 대파, 다시마 등을 넣어
물을 붓고 끓이길 세 차례 반복한 뒤,
다시 물을 붓고 대파를 듬뿍 넣어 한참 끓이면 진국이 완성된다.
홈메이드 동치미에서 출발한 육수는 가게마다 격변을 거쳐 사골 국물, 동치미와 고기 육수를 반반 섞은 것, 100% 동치미 국물 등 제각기 맛의 비법으로 자리 잡았다. 그중 <별당 막국수>는 푹 고아낸 사골 육수를 쓰는 집. 커다란 들통에 사골과 무, 멸치, 양파, 대파, 다시마 등을 넣어 물을 붓고 끓이길 세 차례 반복한 뒤, 다시 물을 붓고 대파를 듬뿍 넣어 한참 끓이면 진국이 완성된다. 손님상에 나오기까지 대략 1주일 소요. 육수에 들이는 정성이 설렁탕집 못지않다. 잘 익은 양념장도 별당 막국수의 인기 비결. 소금물에 고춧가루를 잠길 만큼 쏟아 열흘간 숙성시키는데, 고춧가루를 흠뻑 잡아먹은 소금물이 자작할 때까지 기다린 뒤 양념 베이스로 사용한다.
돼지고기는 열성 음식. 메밀의 찬 성질을 보필해
배탈이나 설사가 잦은 사람의 위장을 중화시킨다.
메밀의 독성을 해소하는 무생채도 주목할 것.
식초 몇 방울이 더해지면 살균 작용도 겸한다.
건강과 영양을 생각한 이유 있는 고명도 흥미롭다. 소담스럽게 담긴 막국수 위 삶은 계란과 돼지고기 편육, 무생채와 당근, 오이 등이 올라가는데 계란부터 맛볼 것. 앞서 먹은 음식의 맛을 깨끗이 헹궈내 본 음식의 풍미를 제대로 느끼게 돕는다. 돼지고기는 열성 음식. 메밀의 찬 성질을 보필해 배탈이나 설사가 잦은 사람의 위장을 중화시킨다. 메밀의 독성을 해소하는 무생채도 주목할 것. 특히 무 특유의 시원한 맛은 청량감의 최고봉으로, 식초 몇 방울이 더해지면 새콤하게 입맛을 돋울 뿐 아니라 살균 작용도 겸한다.
‘물 막국수’와 ‘비빔 막국수’ 사이 결정 장애를 겪는다면 ‘그냥’ 막국수를 주문할 것. 한 주전자 가득 육수가 따로 나와 ‘비빔 막국수’에서 ‘물 막국수’로 언제든지 옮겨 갈 수 있다. 국수와 단짝을 이루는 메뉴로 녹두빈대떡이나 감자전을 추천. 약한 불에 튀기듯 구워 바삭한 식감과 살짝 기름기 도는 감칠맛이 젓가락질을 부른다.
Where to Eat?
별당 막국수
A 강원도 춘천시 공지로 390
T 033-254-9603
H 10:00~22:00
Tip 1.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메밀’더 알아보기!
<동의보감>에 따르면 메밀은 성질이 평하고 냉하며, 맛은 달고 독성이 없어 내장을 튼튼하게 한다. 특히 메밀의 주요 성분 중 루틴은 출혈성 질환을 방지하고, 풍부한 단백질과 섬유질로 혈관 건강을 이롭게 한다. 체질적으로는 열과 땀이 많은 사람에게 잘 맞는 식재료. 주로 가루를 내 국수나 전 등으로 섭취하며, 차를 끓여 마시기도 한다. 메밀 고유의 맛을 즐기려면 새콤달콤한 육수를 곁들이는 메밀국수, 아삭한 메밀 싹이 리드미컬하게 씹히는 새싹 비빔밥, 한입 크기로 잘라 먹는 메밀전병 등을 맛볼 것. 소화가 꽤 잘되는 편이라 아무리 먹어도 무리가 없다.
에디터 전채련 사진 윤동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