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읽기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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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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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61. 한식, 봄을 머금은 산과 자연에 물들다

저 산은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네

산 그리고 한식

2023/02/27 17: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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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같은 자리에 서 있는 산,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봄이 되면 산에는 먹을거리 가 흘러넘친다. 향내 그윽한 산나물도, 몸을 숨긴 각종 채소와 버섯도 오롯이 산속에서 그 자태를 뽐내며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는다. 봄 향기 머금은 산이 주는 은혜로운 한식 재료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가득 채운다. 그렇게 사람들은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노윤영(편집실) 참고자료 <K Food: 한식의 비밀- 4. 캐다·따다·뜯다>(디자인하우스)

산이 주는 재료들을 음식으로 만든 인간

한국의 산지 비율은 70%가 넘는다. KOSIS 국가통계포털의 국토지리정보현황 자료에 따르면 한반도 중 남한에만 4,600여 개가 넘는 산이 분포하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도심에서도 산이 보이는 곳, 산과 가까운 곳에서 사는 경우는 흔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산을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땅의 부분’이라 칭한다. 산과 산지에 대한 정의 요소와 기준은 국가마다 다르다. 영국과 아일랜드에서는 고도 약 610m 이상을 산이라 부르고, 미국 농무부 자연자원보존청에서는 최고봉 고도 300m를 초과하는 다수의 산과 계곡을 산지라 부른다. 한국의 경우 국토교통부 기준으로는 기복량(일정한 지역에서 가장 높은 지점과 가장 낮은 지점 사이의 높이 차)이 100m 이상이면 ‘산’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100m 이하는 산이 아니라 ‘언덕’으로 존재하게 된다. 이 기준으로 보면 우리는 항상 산과 함께 호흡하며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가 탄생한 이래 산은 우리 일상생활에 필요한 무궁무진한 자원을 제공했다. 주택이나 가구에 사용되는 목재, 합판의 원료, 종이를 만드는 펄프의 원료를 생산한다. 현재는 석탄연료와 가스의 영향으로 거의 쓰이지 않지만, 목재와 솔가지, 잡목 줄기, 낙엽, 짚, 건초 등의 임산연료(땔감)는 한때 우리의 난방을 책임졌다. 물은 산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자원 중 하나이다. 산이 없으면 대기 중의 수증기를 붙잡아 비를 내려 하천을 형성할 수가 없다.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마시고 신선함을 주는 산소를 내뿜으며, 오염물질을 걸러내는 공기정화기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중요한 것이 있다. 산이 농경민족이었던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한 음식 재료를 제공해줬다는 점이다. 논과 밭에서는 음식 재료를 얻기 위해 직접 재배해야 했지만, 산에는 농사를 짓지 않고도 채취해 섭취할 수 있는 식물이 무궁무진했다. 물론 산의 그 무수한 식물들을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만들어내는 일이 쉬웠을 리 없다. 문화인류학자 한경구는 한국인의 식생활은 악식 개척의 역사를 거쳐 완성됐다고 말한다. ‘악식’이란 맛없는 거친 음식, 가공되지 않은 야생에서의 상태 그대로를 뜻한다. 한반도에서 나는 식용 식물 가운데 상당수도 약식에서 출발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포기를 모르는 불굴의 의지가 있었다. 무엇보다 ‘요리하는 동물’이었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산에서 나는 식물과 열매 중 음식 재료를 선별했고, 인간들은 이를 요리하고자 불과 도구를 사용했다. 갖가지 조리 과정과 여러 재료의 배합, 양념 첨가 등을 통해 지금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냈다. 먹지 못하던 걸 먹을 수 있게 됐고, 먹기 힘든 것은 먹기 쉽게 만들었다. 좀 더 맛있게, 소화하기 쉽게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더 많은 열량과 영양소를 끌어냈다.

산에 빼곡하게 자리 잡은 한식 재료들

겨울은 춥고 건조하며, 여름은 고온 다습해 계절 변화가 뚜렷한 한반도의 기후와 토양은 나무 종류와 특징을 결정 짓고, 이는 음식 재료에도 영향을 미친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지형은 지연 간 기후 차이를 만들어내고 위도에 따라 난대림, 온대림, 냉대림 등 다양한 식물이 분포한다. 한국 음식의 종류가 다양하고 맛있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바로 한반도의 산 덕분이다.

쌀을 비롯한 곡류로 만든 밥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의 밥상은 오래전부터 밥과 반찬, 즉 주식과 부식으로 이루어졌다. 그중 산에서 자란 산나물과 채소, 열매 등은 한국인에게는 중요 부식 중 하나였다. 한국인이 1,000여 종 넘는 식물을 식용한다고 하는데 그것도 결국 우리 주변에 산이 많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재배가 활발해지면서 밭에서도 다양한 산나물과 채소를 재배하지만, 과거 한국인의 밥상에서 산에서 나는 음식 재료들의 위치는 확고했다.

앞서 언급했듯 한국은 산지 비율이 높은 만큼, 우리가 즐길 수 있는 한식 재료들도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취나물과 두릅, 방풍나물, 곰취, 원추리, 참나물, 당귀잎 등의 산나물은 예로부터 현재까지 한국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더덕과 우엉 등 산에서 자라는 근채류 역시 마찬가지다. 버섯 역시 산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보물 같은 재료이고, 대추와 밤, 잣, 도토리, 호두 같은 열매들도 산속 숲에서 자란다.

아낌없이 주는 산지 식물의 효능

한반도의 기후와 토양의 영향을 받아 자란 산지 식물들은 그만큼 효능이 뛰어나다. 특히 긴 추위를 이겨낸 봄나물들은 다른 제철 음식에 비해 비타민과 미네랄 등의 영양소가 풍부해 피로와 미세먼지, 빈혈, 다이어트 등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취나물은 각종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한데, 그중에서도 특히 비타민 A의 함량이 높다. 이는 체내의 노폐물을 배출하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며 항산화 작용을 통한 암 예방과 피부 노화 방지에 효능이 있다. ‘봄나물의 제왕’이라 불리는 두릅은 비타민 A, 비타민 B군과 비타민 C의 함량이 높아서 원기를 회복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풍을 예방한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방풍나물은 과거에는 주로 약재로 사용됐으나 현재는 음식 재료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칼륨이 매우 풍부하고 칼슘과 인, 철분 등의 무기질이 다량 함유돼 있으며 비타민 B군과 베타카로틴이 풍부해 감기, 두통, 발한, 거담 등의 증세에 효능이 있다. 맛과 향이 뛰어난 참나물 역시 베타카로틴이 풍부한 대표적 알칼리성 식재료로 체내의 노폐물을 배출하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효능이 있다. ‘곰이 좋아하는 나물’이라는 뜻에서 유래됐다는 곰취는 특히 고기를 태울 때 생기는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의 활성을 60~80% 억제하는 항암효과를 지녔다. 이 밖에 기관지 질환과 동맥경화에 좋은 더덕, 이눌린이 풍부해 신장 기능을 높이고 배변을 촉진해주는 우엉 같은 채소도 빠질 수 없다.

산은 언제나 같은 곳에서 우뚝 서서 말없이 우리를 내려다본다. 양희은의 노래 <한계령>이 말하듯, 사람들에게 ‘우지(울지) 마라’, ‘잊어버리라’고 말하며 지친 어깨를 떠민다. 그렇게 우리에게 깨달음과 위로를 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원할 때마다 언제든 몸과 마음을 채워주는 음식을 선사했다. 그러니 산이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준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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