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전하는 온라인 매거진
Vol 61. 한식, 봄을 머금은 산과 자연에 물들다
산은 풍요로운 한식의 대지
속담 속 한식
우리나라 땅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산. 그만큼 한국의 문화와 산은 깊은 연관이 있다. 산은 인간에게 쉼터가 되어주고, 산에서 나온 각종 음식 재료는 한식의 기반이 된다. 산, 산에서 나는 음식 재료와 관련된 속담을 살펴보며 산과 우리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본다.
글 차예지(편집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어떤 음식을 먹는가가 그 사람을 설명해준다는 말이 있다. 발 딛고 선 땅에서 난 갖가지 식재료는 그 사람이 먹는 음식을 이루는 근간이 된다. 산과 들, 물의 길을 따라 만드는 음식도 다르다. 바다 근처 마을에서는 해물을 활용한 음식이 발달하고 산과 인접한 마을에서는 채소 위주의 식단이 꾸려진다.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먹고 살며, 음식의 뿌리를 알고 먹으면 어떤 것이든 보약이 된다는 생각이 깔린 문화일 것이다.
‘들 중은 소금을 먹고 산 중은 나물을 먹는다’는 속담도 각자의 자리에 맞는 일이 있다는 의미다. 타고난 대로 산다는 말은 이제 고리타분한 생각이 됐고, 원하는 건 무엇이든 쉽게 먹을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여전히 먹는 일은 사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신토불이라고, 사람과 그 사람이 먹고사는 땅은 둘이 닮았다. 생각해보면 ‘먹고 살다’라는 말도 ‘먹다’와 ‘살다’가 붙은 게 아닌가.
‘산골 부자는 해변가 개보다 못하다’라는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물고기 반찬을 먹는 데는 산골의 부자가 바닷가의 개보다 못하다는 뜻으로,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자신이 있는 곳의 처지에 맞게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무에서 고기를 찾는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산에 나는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도끼 들고 나물 캐러 간다’는 나물을 캐기에 적합하지 않은 우둔하고 무거운 도끼를 들고 나물을 캐러 간다는 뜻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봄에 나는 여린 나물을 캐려면 그에 맞는 도구가 필요하다. 이 역시 격에 맞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처한 환경에 어울리는 분수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자연의 이치에 맞는 자신만의 품위를 지키라는 의미를 산에 빗대 표현했다.

산의 기운을 머금다
산에서 나는 나물과 채소들은 들에서 난 것보다 모양은 투박할지 몰라도, 그 맛과 향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특히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는 산나물이 제철이다. 겨우내 얼어 있던 땅이 녹으면서 향긋한 봄나물들도 얼굴을 내미는 시기다. 취나물과 두릅, 원추리, 참나물, 곰취 등 흙의 기운을 가득 품은 나물들은 산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알이 꽉 찬 열매들도 마찬가지다. 흙의 기운과 나무의 보살핌 속에서, 산 나무 열매들도 익어간다.
그렇다고 모든 열매가 다 달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산살구’라 불리는 개살구는 산기슭의 양지쪽에서 주로 자라는 낙엽 활엽교목인 개살구나무의 열매다. 개살구는 달걀 모양으로 생겼는데, 떫은맛이 나서 유독 이에 얽힌 속담이 많다. 우선 ‘떫기는 오뉴월 산살구 같다’는 말은 사람을 사귀는 데 있어 친근하지 못하고 떨떠름하게 군다는 뜻이다. 맛이 떫은 산살구처럼 보기만 해도 입이 꺼끌거리듯 불편한 사람이 있다. 외따로 가지에 매달린 산살구처럼 남과 친해지지 못하고 밀어내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산살구는 일반 살구(참살구)에 비해 사랑받지 못하는 열매다. 이 때문에 참살구와 비교 우위에 자주 놓이곤 한다. ‘산살구 지레 터진다’는 말은 참살구에 비해 맛도 없는 산살구가 참살구보다 먼저 익어서 터진다는 뜻으로, 능력이 없거나 수양이 부족한 사람이 잘난 체하며 까부는 행동을 비웃는 말이다. 또는 아직 다 자라기도 전에 못된 짓부터 배운 사람을 핀잔하는 말이기도 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못난 사람이나 사물 또는 언짢은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설명이 올라와 있을 정도니 선조들에게 어지간히 미움을 받았던 모양이다.
반면 ‘개살구도 맛 들일 탓’이라는 속담은 시고 떫은 개살구도 자꾸 먹어 버릇하면 맛이 들어 좋아하게 된다는 뜻이다. 처음엔 미워하던 것도, 한 번 정을 붙이기 시작하면 점차 좋아지게 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른다. 모든 일의 좋고 나쁨은 그 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문제, 즉 그 사람의 주관에 달려 있다. 산살구를 미워하면 떫은맛이 나고, 산살구에게 정을 붙이면 참살구보다도 좋아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험한 지형에 산다는 이유 탓인지 산에 사는 동물들도 유독 포악스러운 이미지를 가진다. ‘산 닭 길들이기는 사람마다 어렵다’는 산에 사는 닭을 길들이기는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는 뜻으로, 제멋대로 버릇없이 자라난 사람을 교육하기는 몹시 어렵다는 의미다.
동물이건 식물이건 산에서 자란 것들은 강인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때로는 험한 산세 속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라도 산이 품은 질 좋은 식재료 덕분에 우리는 또 먹고, 살아간다. 다가오는 봄에는 주변의 고마운 산을 찾아 올라가 보면 어떨까. 아,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리 산과 땅에서 자란 재료로 만든 건강한 한식 한 끼 든든하게 챙겨 먹고 올라가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