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읽기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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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41

Vol 45. 국밥, 혼연일체의 어울림

국밥 한 그릇에 시대의 기억, 삶의 편린을 담아낸 문학 작품들

K 콘텐츠 속 한식

2021/10/25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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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서민적인 음식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 문학 작품에서도 종종 국밥이 소재로 쓰였다. 
작품 속에서 국밥은 때로는 위로의 의미였고, 또는 기다림과 어울림과 같은 정서를 자아내기도 했다. 
국밥이 지닌 서민적인 정감, 국밥 한 그릇 속에 녹아든 서사를 그린 작품들을 살펴본다.


국밥에서 표출되는 서민의 정서

문학 작품에서 등장하는 음식은 개인과 사회의 면면을 재구성해 보여준다. 문학 속에서 음식은 작가가 그것을 통해 투영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얼개를 담는다. 소재가 되는 음식은 작가의 기억과 취향, 기호 등을 보여준다. 즉 음식은 기억이 재생되는 과정에서 작가가 가진 경험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가령 국밥을 통해서는 주인공의 목소리를 통해 작가의 내적 정서를 보여주고, 어릴 적의 기억을 찾아내거나 현실의 고단함을 줄여보고자 한다.

 

함민복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시인은 시 한 편으로 쌀과 국밥과 소금을 살 수 있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박리로 살다 가는 게 사람이고, 이왕이면 상처보다 사랑을 남기고 가야 한다는 것이 시인의 말이다.

 

이재무

면목 없고 죄스러운 말이지만
장례식장에서 먹는
국밥이 제일 맛이 좋더라
시뻘건 국물에 만 밥을 허겁지겁
먹다가 괜스레 면구스러워 슬쩍
고인의 영정 사진을 훔쳐보면
고인은 너그럽고 인자하게
웃고 있더라
매번 고인께는 마지막으로 베푸는 국밥이니
넉넉하게 먹고 가라
한쪽 눈을 찡긋, 하더라
늦은 밤 국밥 한 그릇
비우고 식장을 나서면
고인은 벌써 별빛으로 떠서
밤길 어둠을 살갑게 쓸어주더라

 

장례식장의 풍경을 진솔하고 수식 없이 묘사한 이 작품에서 국밥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극명한 대비를 보여준다. ‘넉넉하게 먹고 가라 한쪽 눈 찡긋, 하더라’는 말은 곧 고인이 산 자를 위로하는 의미이고, ‘고인은 벌써 별빛으로 떠서 밤길 어둠을 살갑게 쓸어주더라’는 말 역시 고인이 산 자에 대해 따뜻한 배려를 해주는 것이다. 더없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별을 국밥 한 그릇에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내적 고백, 삶의 애환이 자아내는 유대적 감성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은 1920년대의 서울 정경이 묘사돼 있다. 김첨지의 아내는 병에 걸려 한 달이나 꼼짝 못하고 있었지만, 인력거꾼 일로는 약 살 돈도 벌지 못하고 있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비오는 날, 김첨지는 이날 따라 유독 가지말라고 말리는 아내를 두고 돈을 벌러 나왔다가 재수 좋게도 손님이 많아서 제법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런데 집에 가까워질수록 이상한 불안감이 들고, 마침 만난 친구와 술을 마시며 불길한 마음을 떨쳐낸다. 그러다 취중에 “우리 아내가 죽었네”, “아내가 죽었는데 내가 술이나 처먹고 있으니 내가 죽일 놈이다”라며 우는 소리를 한다. 취중이었지만 아내가 그리 먹고 싶다고 하던 설렁탕을 사들고 집에 돌아간다.

떨어진 삿자리 밑에서 나온 먼지내, 빨지 않은 기저귀에서 나는 똥내와 오줌내, 가지각색 켜켜이 앉은 옷내, 병인의 땀 썩은 내가 섞인 추기가 무딘 김첨지의 코를 찔렀다.
“이런 오라질 년, 주야장천 누워만 있으면 제일이야! 남편이 와도 일어나지를 못해!”
라는 소리와 함께 발길로 누운 이의 다리를 몹시 찼다. 그러나 발길에 채이는 건 사람의 살이 아니고 나무등걸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설마설마하던 불안감을 느끼던 김첨지는 결국 아내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는 그 시신을 붙들고 절규한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그렇게 울부짖으며 절망하는 목소리로 소설은 끝맺는다.

 

전성호

비 오다 그친 날, 슬레이트집을 지나다가
얼굴에 검버섯 핀 아버지의 냄새를 맡는다
(중략)
한달치 봉급을 들고 아들이 돌아오면
아버지는 마른 정강이를 이끌고 해장국집으로 갔다
푹 들어간 눈 속으로 탕 한 그릇씩 퍼 담던 오후
길 끝 당산나무에 하늘 높이 가슴 치는 매미 울음소리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껴안을수록 멀어지는 세상
우산도 없이 젖은 머리칼을 털며
서창 해장국집 문을 열고 들어서면
습기 찬 구름 한 덩이 닫힌 창밖으로 빠르게 흘러가고
검버섯 핀 손등 위로 까맣게 아버지 홀로 걸어가신다

살다 허기지면 찾아가는 그 집
금빛 바늘처럼 날렵한 울음 사이로
까마귀 한 마리 잎을 흔들며 날아간다

 

해장국집은 아들에게 아버지와의 아픈 기억이 배어 있는 장소다. 아들은 삶에서 허기가 찾아올 때 서창 해장국집에 들러 아버지의 추억과 만난다. 그 가운데 아들은 국밥을 통해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끊을 수 없는 가족의 유대감을 느낀다. 누구나 가난했던 시절, 아들의 봉급으로 해장국을 드시던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 속에 아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고백을 담겨 있음을 아들은 알았다. 그리고 조용하게 먹던 해장국집에서 아버지가 하고 싶었던 말,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떠올린다. 아들은 삶의 허기가 지면 다시 고향의 해장국집을 찾아가 국밥을 먹으며 아버지를 만난다.

국밥은 오랜 시간 국물을 우려내는 기다림의 가치, 밥을 말아 뒤섞는 어울림의 가치, 사람들이 모여 먹는 공동체적인 가치를 가진 음식이다. 그래서 국밥을 소재로 하는 작품을 살펴보면, 당시의 시대상이나 생활 모습, 작가의 가치관과 철학, 정서적 특징 등이 드러난다. 국밥은 어떤 종류든지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기억을 불러내는 서사가 담겨있다. 고단한 하루, 달래듯 한술 뜨는 국밥에는 얽히고설킨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힘이 있다. 국밥 한술을 뜨는 행위는 사소할지언정, 먹는 동안은 삶의 무거운 짐을 풀고 평안을 찾게 된다. 이처럼 오래도록 우려낸 따뜻한 국밥 한 그릇에는 우리네 마음을 어루만지는 진한 위로가 가득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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