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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가 빚은 맛의 균형과 쌈의 미학, 어광 셰프

맛을 잇는 사람들

2026/04/20 14:5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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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기운은 덜어내고, 부족한 기운은 채운다.” 명리학 용어인 억강부약(抑强扶弱)이 접시 위에 구현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LA에서 발효와 제철 식재료를 기반으로 독창적 컨템퍼러리 한식을 선보이는 어광 셰프는 이 철학을 한 입의 ‘쌈’ 속에 담아낸다. 

그는 자극적인 첨가물 대신 발효의 힘을 빌려 재료 본연의 성질을 극대화하고, 한국의 제철 재료를 페스토나 오일로 변주하며 서구의 요리 체계 위에 한국적 정취를 정교하게 쌓아 올린다. 때로는 낯설 수도 있는 쌈 문화를 현지의 솔 푸드인 타코에 비유하며 다정한 미식 경험을 제안하기도 하는 어광 셰프. 전통의 뿌리는 지키되 경계 없는 진화를 거듭하는 그의 미식 여정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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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LA에서 한식을 중심으로 요리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10여 년 전 레스토랑 바루(BAROO)를 오픈할 당시에는 제가 경험한 다양한 문화를 자유롭게 담아낸 요리를 선보였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도 현지 매체들이 이를 한식의 범주로 소개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이를 계기로 저의 뿌리인 ‘한국’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깊이 파고들게 되었죠. 고민한 끝에 제가 배워온 서구의 요리 체계와 한식의 근간을 조화롭게 접목했고, 그 흐름이 지금의 바루로 이어졌습니다. 제 요리가 100% 전통 한식은 아닐지라도, 저의 뿌리인 한식을 기반으로 계속 소통하며 진화해나가고 있습니다.


Q. 해외에서 한식의 발효와 식재료가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나요?

한식의 발효와 자연 식재료는 단순히 이국적 풍미를 넘어 현대 식문화가 마주한 건강과 환경문제에 대한 매력적인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자극적인 첨가물 없이도 깊은 감칠맛을 내는 발효 기법과 식재료 본연의 특성을 살리는 방식은 전 세계 미식가에게 지속 가능한 식문화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Q. 셰프님이 선호하는 한국의 봄철 식재료와 그 활용법도 소개해주세요.

LA에서는 현지 상황에 맞춘 ‘창의적 재료 수급’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올해는 봄을 대표하는 재료로 명이나물과 쑥을 다채롭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명이는 장아찌로 담가 풍미를 살리는 것은 물론, 페스토나 소스로 색다르게 변주하기도 하죠. 쑥은 깊은 맛의 국물을 내거나 향긋한 오일로 추출해 요리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사용합니다. 이 외에도 한국에서 정성껏 공수한 봄나물들을 채수와 밥물에 녹여내며, 이곳 분들에게 한국의 계절감을 전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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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 입의 쌈을 완성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명리학 용어 중 ‘억강부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강한 기운은 덜어내고 부족한 기운은 더해준다는 뜻인데, 저는 한 입의 쌈을 완성할 때 이 원리를 가장 우선순위에 둡니다. 쌈을 한입에 넣었을 때 느껴지는 다양한 맛과 다채로운 질감, 나아가 시각적 색채의 조화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 핵심이죠. 식재료의 강렬한 자기주장 대신 재료의 섬세한 풍미를 북돋아주는 이 조화로운 어울림이야말로 한식 쌈의 진정한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Q. 자칫 낯설 수도 있는 쌈 문화를 현지 고객에게 어떻게 소개하나요?

문화의 벽은 관점을 살짝 바꾸는 것만으로도 쉽게 허물어지곤 합니다. 저는 LA 현지 고객에게 쌈을 대접할 때, 이곳의 솔 푸드인 타코를 즐기는 방식과 같다고 설명해드려요. ‘한국식 타코’라는 직관적 비유 하나만으로도 고객은 금세 친숙함을 느끼며 즐겁게 쌈을 싸기 시작하죠. 눈으로도 즐길 수 있도록 쌈 채소와 소스, 정갈한 곁들이 구성을 통해 완성도를 높입니다. 이처럼 익숙한 문화를 은유적으로 제안하는 발상의 전환이 한식을 더 쉽고 깊이 있게 경험하도록 만들지요.


Q. 셰프님이 선호하는 쌈 조합과 어울리는 한국 전통주도 추천해주세요.

저는 파래를 잘게 다져 만든 튀김옷을 입힌 생선 요리를 자주 냅니다. 이 요리에 제철 쌈 채소와 구즈베리, 씨앗, 쌈장을 곁들이면 맛의 층위가 한층 풍성해지죠. 실제 레스토랑에서도 반응이 뜨거운 메뉴 중 하나입니다. 여기에 다섯 가지 맛이 감도는 오미자주나 은은한 솔 향이 일품인 솔송주를 페어링해보길 추천해요. 전통주의 향긋함이 튀김의 고소함, 쌈의 싱그러움과 어우러져 한층 입체적 미식을 경험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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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세계적으로 한식이 다양하게 재해석되고 있는데요, 셰프님이 생각하는 ‘지켜야 할 한식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제가 생각하는 한식의 본질은 ‘조화와 균형의 지혜’입니다. 밥·국·나물·발효 음식이 한 상에 차려져 각자의 입맛대로 조합해 먹는 즐거움, 그리고 함께 나눠 먹는 공동체의 정은 한식만의 독보적 매력이에요. 아무리 기교가 화려해질지라도 우리 선조들이 일궈낸 발효의 미학과 상생하는 정신만큼은 우리가 끝까지 지켜내야 할 한식의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Q. 지속 가능한 미식을 위해 특별히 공들이는 부분도 궁금합니다.

지속 가능한 미식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넘어 자연과 생산자 그리고 셰프가 건강한 선순환을 이룰 때 완성된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 매주 파머스 마켓에서 현지 농산물을 직접 고르고, 한국 직송 산나물로 밥을 지으며, 채소 자투리 하나까지 채수나 장류에 알뜰히 활용합니다. 작년부터는 직접 장을 담그며 자연과의 연결 고리를 더욱 단단히 하고 있어요. 또한 매달 매출의 1%를 현지 소규모 농축산업 단체에 기부하며, 생산자와 요리사가 함께 상생하는 건강한 생태계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Q. 최근 현지에서 반응이 뜨거운 메뉴를 소개해주세요.

최근에는 ‘한 입의 미학’을 담은 메뉴가 사랑받고 있습니다. 구운 증편 위에 떡갈비와 트러플 김치 소스를 얹은 요리, 직접 만든 라즈베리 고추장에 버무린 소고기, 훈연한 홍합과 캐비아를 곁들인 육회 타르트가 대표적이죠. 지난 시즌에 큰 사랑을 받은 은대구조림의 뒤를 이어 지금은 쌈장 XO 소스와 깻잎 소스를 감태부각과 함께 비벼 먹는 나물밥, 그리고 오랜 시간 저온으로 익혀 부드러운 식감을 극대화한 우엉 소스 갈비도 미식가들 사이에서 필수 주문 메뉴로 꼽힙니다.


Q. 마지막으로 셰프님이 꿈꾸는 한식의 미래와 그 안에서 바루는 어떤 존재가 되길 기대하나요?

제가 꿈꾸는 한식의 미래는 일시적 유행을 넘어 한식과 관련 있는 모든 이가 함께 성장하는 ‘건강한 생태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세계 무대에서 높아진 한식의 위상만큼이나 그 저변에 사회를 향한 선한 영향력이 흐르길 바라죠. 그 흐름 속에서 바루는 화려한 주인공이 되기보다 한식 본연의 가치를 묵묵히 실천하는 단단한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자 합니다. 미식 시장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진실한 연결 고리, 이것이 바루가 약속하는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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