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읽기 좋은 날

한식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전하는 온라인 매거진

2026
285

쌈, 한국 식탁을 감싸는 문화의 맛

한식 인사이트

2026/04/20 13:48:48
|
80

⁠⁠⁠⁠⁠⁠⁠

한국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즐거움 중 하나가 바로 ‘쌈’이다. 수확기 들판에서 먹던 호박잎쌈, 긴 물질 끝에 해녀의 허기를 달래주던 미역성게알쌈, 삼겹살상추쌈과 소주 한잔까지···. 쌈은 이렇듯 우리 일상의 다양한 순간을 함께해온 음식이다. 상추든 호박잎이든 잎이 넓은 채소라면 무엇이든 쌈이 되고, 다시마·김·미역 같은 해조류도 훌륭한 재료가 된다. 손바닥 위에 잎채소를 펼쳐놓고 속 재료와 쌈장을 올린 뒤 보자기처럼 감싸 한입에 넣는 순간, ‘탄단지’의 식감과 향이 입안 가득 어우러진다.

이어령 선생은 쌈이야말로 한식의 융합성이 빛을 발하는 음식이라 했다. 먹는 사람이 직접 맛을 만들고, 모든 것을 포용하며 통합하는 문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불판에 구운 삼겹살의 향이 더해져 나무와 흙 및 쇠의 기운이 뒤섞인, 어쩌면 ‘목금토’의 맛이라 부르고 싶은 한국인의 풍미다. 이처럼 다채롭고 포용적인 쌈은 과연 어떤 음식일까?

⁠⁠⁠⁠⁠⁠⁠

⁠⁠⁠⁠⁠⁠⁠

굽다-구이, 볶다-볶음, 조리다-조림, 찌다-찜 등 한국어에서는 ‘조리 행위’를 뜻하는 동사와 그 결과물인 ‘음식’ 명사가 확실한 짝을 이룬다. 그런데 여기에 ‘싸다-쌈’을 더하면 미묘하게 초점이 어긋난다. ‘싸다’는 조리 행위이면서 동시에 취식 방법이기도 하다. 굳이 구분하자면, 취식 방법에 더 가깝다. 쌈(包)은 수단이자 목적이 되는 독특한 위치의 음식이다. 《Collins Dictionary》 같은 영어 사전에서도 이를 wraps로 풀어쓰기보다 ssam이라는 고유 명칭으로 표기하는데, 그만큼 고유성을 인정받는다는 의미다.

멕시코의 부리토, 베트남의 바인쌔오는 언뜻 쌈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전분과 비전분 재료를 섞어 만든 일종의 ‘곡물 전병 말이’에 가깝다. 오히려 베틀잎(betel leaf)에 싸 먹는 태국의 미앙 캄, 포도잎으로 싸는 지중해의 돌마데스가 쌈과 유사해 보인다. 다만 이들 역시 피(皮)가 되는 생채소를 한 번 더 쪄내는 과정을 거친다. 조리와 취식이 즉석에서 이어지는, 생잎채소로 싸 먹는 음식은 한국의 쌈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wraps 대신 ssam이라는 호명은 충분히 타당하다.

⁠⁠⁠⁠⁠⁠⁠

⁠⁠⁠⁠⁠⁠⁠

‘국민 쌈’이라 일컫는 상추쌈의 연원은 아득히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인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상추를 먹어왔다. 중국 청대의 문헌 《천록식여(天祿識餘)》에는 고려 사신이 가져온 상추 씨앗이 매우 귀해 천금채(千金菜)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원나라에 보낸 고구려 공녀들이 퍼뜨린 상추쌈 유행 덕분에 상추씨 가격이 크게 올랐다는 일화도 함께 전해진다.

조선 시대에도 쌈은 일상과 기록 속에 뚜렷이 남아 있다. 《승정원일기》에는 조선 숙종 때 대왕대비 수라상에 상추를 올리려다 실수로 담뱃잎까지 올려 담당자가 엄히 처벌받은 기록, <농가월령가>와 김려의 <상원리곡>에는 상추쌈과 곰취로 싼 복福쌈 풍습이 등장한다. 특히 정조 때 문신 유득공의 시에서는 상추쌈을 꽃봉오리와 연꽃에 비유하며, 쌈을 ‘먹는 음식’에서 ‘즐기는 음식’으로 신분을 상승시켰다. 그사이 궁중이나 반가에서는 얇게 부친 밀전병에 달큼하게 만든 깨나 팥, 가지각색 나물을 놓고 돌돌 말아서 먹는 연병(구절판)이 잎채소쌈 옆에 자리 잡았다.

⁠⁠⁠⁠⁠⁠⁠

근현대로 접어든 이후에도 ‘국민 쌈’의 인기는 좀처럼 식을 줄 몰랐다. 1960년대 일본 수출을 위한 대규모 양돈 사업과 맞물린 삼겹살 부흥기는 상추와 양배추는 물론, 각종 숙채까지 연달아 성장시켰다. 그 인기는 한국이 2023년 OECD 국가 중 과채류 섭취량 1위를 기록하며 ‘채소 많이 먹는 나라’라는 영광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오늘날 쌈은 비건·저탄소 식단 흐름과 맞물리며 ‘쌈밥 전문점’, ‘쌈 플레이트’처럼 하나의 장르로 독립하고 있다. 이제 쌈은 단순한 식사 방식을 넘어 일종의 식문화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

⁠⁠⁠⁠⁠⁠⁠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연일 흥행 기록을 경신하면서 단종의 유배지 영월의 음식 또한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단종이 영월 청령포에 머물 때 즐겨 먹었다는 어수리나물 밥상이 대표적이다. 이름 뜻 그대로 ‘임금께 드리는 나물’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쌈과 가까운 음식인 메밀전병도 최근 ‘단종 코스’에 이름을 올렸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밤마다 떨어지는 메밀 꽃잎을 보며 눈물 흘렸을 단종에게 민초들이 메밀총떡을 만들어 대접했다고 한다. 물론 이는 공신력 있는 사료보다는 민간에서 구전되어오는 서사다. 폐위된 왕이라 기록이 충분하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그 거친 곡물 지짐 속에 백성들의 따뜻한 위로가 담겼다는 이 서사는 쌈 문화의 정신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속과 겉이 각각의 맛을 품고 서로 어우러지며 하나 되는 한국 문화의 포용성. 쌈만큼 이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음식이 또 있을까?

참고 자료

《이어령의 말》, 《동국세시기》, 유득공 《영재집(泠齋集)》

자료 제공

㈜쇼박스

페이지 만족도 조사 및 업무담당자 정보

업무담당자

  • 담당부서:
  • 연락처:
이 페이지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를 선택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