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읽기 좋은 날
더 깨끗이 더 알뜰히, 한식과 제로 웨이스트
맛있는 큐레이션

환경 보호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요즘, 사람들은 일상 곳곳에서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고 있다. 포장재 없이 내용물만 판매하는 제로 웨이스트숍을 찾고, 기존 옷을 리폼하는 에코 패션을 추구하며, 소유와 소비를 최소화하는 미니멀 인테리어를 선택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낭비를 줄여야 할 곳은 다름 아닌 ‘식탁’ 위다. 매일매일 하루 세 번씩 꾸준히 쌓여가는 음식물 쓰레기의 심각성, 그리고 이를 해결하는 효과적인 열쇠가 되어줄 ‘한식’의 가능성을 들여다본다.
식탁 위에서도 ‘제로 웨이스트’가 필요한 이유

유엔환경계획(UNEP)의 2023년 발표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의 양은 약 9억 3천만 톤에 달한다. 하루로 환산하면 매일 10억 끼니에 해당하는 양이다. 이 막대한 음식물 쓰레기들은 매립되고 소각되는 동안 다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8~10%를 차지한다. 특히 부패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25배 강력해 기후 위기를 앞당기는 주범으로 꼽힌다. 결국 음식물 쓰레기는 단순한 낭비를 넘어 환경 문제의 핵심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기후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르고 비용 효율적인 방법은 음식물 낭비를 줄이는 것”이라는 환경 연구원들의 목소리도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절약의 지혜가 엿보이는 우리의 밥상

음식물의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기가 마냥 어렵고 까다롭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한국인에게는 그 첫걸음이 한결 수월하다. 한식이 본래 자원을 아껴 쓰고 음식의 낭비를 줄이는 방식으로 발전해온 식문화기 때문이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한국인들은 발효와 저장 기술을 통해 남은 재료를 오래도록 즐길 방법을 찾아냈다. 김치, 장아찌, 젓갈이 대표적인 예시다. 배추뿐 아니라 무, 갓, 열무, 부추 등 제철 채소를 다양하게 담가두고 사계절 내내 식탁에 올렸다. 계절마다 다른 재료를 버리지 않고 살려낸 발효의 지혜는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훌륭한 제로 웨이스트 실천이었다.

한식은 식재료의 ‘전체 활용’ 또한 중시한다. 예컨대, 활용도가 낮은 무의 잎은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시래기로 소비되었고, 국물을 낼 때 쓰인 버섯이나 우엉 등도 부드러운 식감을 살려 ‘조림’의 주재료가 됐다. 이외에도 온갖 채소의 뿌리부터 줄기, 껍질까지 빠짐없이 사용하는 조리법은 한식의 알뜰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한식에는 남은 육수와 양념을 재활용하는 문화도 있다. 국수의 육수를 활용해 죽으로 즐기거나, 찜의 양념에 밥을 볶아 새로운 별미로 만든다. 냉장고 속 남은 밑반찬은 비빔밥과 김밥의 재료로 사용하는 등 잔반을 또 하나의 식재료로 사용함으로써 음식물의 낭비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효과를 낸다.

무엇보다도 한식의 밥상 문화는 ‘나눔’을 전제로 한다. 1인 1메뉴가 기본인 서양식과는 달리, 여러 사람이 한 상에 둘러앉아 반찬과 메인 요리를 함께 나눈다. 각자 필요한 만큼만 덜어 먹음으로써 남김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다. 공동체적 식사 방식은 단순한 풍습을 넘어서 음식물 낭비를 줄이는 생활 지혜이기도 하다.
한 끼의 식사로 꿈꾸는 지속 가능성
이렇듯 오늘날 전 세계가 주목하는 제로 웨이스트는 사실 우리의 밥상에서 오래전부터 지켜온 원칙과 맞닿아 있다. 발효와 저장, 식재료의 전체 활용, 잔반의 재조리, 그리고 나눔의 문화까지. 한식의 오래된 지혜는 지금 우리가 직면한 환경 위기 앞에서 더욱 빛을 발하며, 온실가스 감축과 자원 절약으로 이어진다.
다만 ‘진수성찬’이라는 말처럼 많은 반찬을 차려내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문화는 개선해 나가야 할 과제다. 특히 한정식처럼 과도하게 상을 채우는 경우에는 불필요한 음식물 쓰레기의 양산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한식 본연의 가치는 절약과 나눔에 있지만 시대에 맞게 현명하게 조정하고 실천해 나갈 때 진정한 제로 웨이스트 밥상이 완성될 것이다. 결국 지구를 지키는 일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의 일상적인 한식 한 끼 속에 이미 그 답이 담겨 있다.
참고문헌
KBS 뉴스 <유엔 “매일 10억명 먹을 음식물 버려져…온실가스 배출에 영향”>, 에듀모닝 <주말 가족이 함께 만드는 제로웨이스트(zero-waste) 식탁>, 미쉐린가이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한국의 발효음식>, 그린포스트 <유행처럼 번지는 ‘제로웨이스트’...실현 가능 미션일까?>, 비건뉴스 <기후 위기의 숨은 주범, 음식물 쓰레기…“온실가스 줄이려면 식탁부터 바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