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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02

Vol 13. 비옥한 평야의 선물, 경기도

문화유산이 된 맥주 골목 <을지OB베어>

2023/11/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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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가을 저녁 을지로 맥주 골목의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거기 옛날부터 유명하지 않았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가 있다면, 얘기로만 듣는 것과 실제로 가보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수천 명의 인파가 만들어낸 거대한 축제.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중구청에서 이 구역에 옥외 영업을 공식적으로 허가해주면서 원래도 흥청거렸던 술판이 더욱 큰 술판이 되었고 이젠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민’에서 올라온 필요를 ‘관’이 받아준 몇 안 되는 훌륭한 사례다.

맥주 한 잔에 담긴 남다른 철학

을지로 맥주 골목은 큰 길 안 쪽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어느 방향에서 오든 어두컴컴한 골목 하나는 꺾어서 들어와야 한다. 이런 점 덕분에 깊은 산 중에 갑자기 구중궁궐이 나타난 듯 드라마틱한 효과가 있다. 특히 처음 방문한 이들은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인파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이 골목에선 ‘만선호프’가 가장 유명하고 사람도 많지만 원조 집은 따로 있다. <을지OB베어>는 1980년부터 이 골목에서 처음으로 맥주와 노가리를 내기 시작했다. 둘러보면 간판도 옛날 감성이 살아있어 가장 멋들어졌다. 막상 가보면 가게는 매우 작지만 오히려 옛 모습 그대로인 듯한 느낌이 들어 원조라는 말이 와 닫는다. 이 열 평 남짓 작은 공간이 사십 년의 세월을 겪으면서 이렇게 큰 규모의 근현대 문화유산이 되었다.

을지OB베어의 맥주는 다른 집 맥주들과 달리 첫 입에 청량하진 않다. 처음 마셔본 사람들은 치고 올라오는 탄산이 부족하고 거품도 빨리 없어져 영 맛없는 맥주라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맛은 의도된 것이다. 이 집은 냉각기를 쓰지 않는다. 보통 생맥주는 상온에 보관하면서 냉각기를 이용해 순간 냉각을 시킨다. 맥주통에 일정한 가스를 투입해서 30-50미터 되는 맥주관을 단 번에 통과시키며 온도를 낮추는 원리다. 하지만 을지OB베어는 냉각기를 사용하지 않고 맥주통 자체를 냉장고에 보관한다. 그럼 냉각기를 사용할 필요가 없어지고 탄산도 덜 넣어도 된다. 탄산이 덜하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청량감은 사라지지만 생맥주 본연의 맛은 더 세밀하게 느낄 수 있다. 맥주 한 잔에도 남다른 철학이 담겨있다.

연탄불에 구운 노가리의 매력

생맥주는 한 잔에 3천원, 노가리는 천원이다. 골목을 방문한 이라면 누구나 가볍게 한 잔 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가격도 저렴하고, 날씨 좋으면 매일 수 천 명의 눈 먼 손님들이 방문하니 노가리든 맥주든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낼 것 같은데, 이곳의 노가리는 다른 집들보다 품질이 좋다. 호기롭게 맥주를 몇 모금 넘기고 연탄불에 구운 노가리를 씹어보자. 중간 중간 땅콩을 입 하나씩 털어 넣어 함께 씹어보면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짭짤한 수입 소시지도 이 집만이 가지고 있는 필수 주문 메뉴.

직장인 밀집지역이니 나이든 샐러리맨들만 있을 것 같지만 앳되어 보이는 학생들도 이 골목을 제법 찾는다. SNS를 보면 젊은 친구들은 을지로의 오래된 식당들을 보물찾기하듯 탐험한다. 그들에게 노포는 낡고 허름한 곳이 아니다. 모든 것이 복제품인 세상에 노포가 가지고 있는 진짜라는 감촉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위로한다. 노포는 죽어가는 과거의 화석이 아니라 살아있는 미래 유산이다.

Where to Eat?
서울 을지로 맛집 _ 을지OB베어
A 서울 중구 충무로9길 12
T 02-2264-1597
H 12:00-23:00

블로그 blog.naver.com/bitterpan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bitterpan_i

글·사진 한충희 명예기자(건강한食 서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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