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Hansik)

한식은 아름답고, 맛있으며,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어려울 만큼 건강에 좋은 음식으로
여러가지 식품영양학적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식 스토리

한식 스토리

감자탕

등록일 : 2013.11.13
조회수 : 0
감자탕

감자탕은 저렴한 돼지 등뼈와 감자, 우거지, 갈은 들깨, 깻잎, 파, 마늘 따위의 양념을 넣어 진하고 맵게 끓인 탕으로 감자 속속들이 등뼈 맛이 흠뻑 배어들어 깊고 구수한 맛을 낸다. 아침에 해장국으로 또는 더운 여름과 날씨가 쌀쌀해질 때 식사메뉴, 늦은 밤 야식, 술안주 등으로 이용한다. '감자탕'이란 이름은 돼지 등뼈에 든 척수를 '감자'라 한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과 돼지 등뼈를 부위별로 나눌 때 감자뼈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을 넣어 끓였다고 해서 '감자탕'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그런데 흔히 해장국 대신 먹는 감자 뼈다귀탕은 이와는 조금 다른 모습인데, 기름기를 제거한 돼지등뼈를 넣고 끓여서 국물이 뽀얗게 되면 감자를 통째로 넣고 푹 끓인 형태이다. 감자는 임진왜란 이후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음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역사가 짧은 식품이나 지금은 널리 이용되고 있으며, 특히 감자국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국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감자탕에 유래에 대한 가장 신빙성 있어 보이는 설은 1899년 경인선 철도공사 때 많은 인부들이 철도공사에 동원되어 인천으로 몰리면서 이때 고안된 음식이라는 이야기 이다. 실제 ‘한동길 감자탕 집’을 3대째 운영하는 주인의 증언에 의하면, 한동길은 전라도에서 태어났다가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문에 인천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가세가 기울자 생계 때문에 경인철도회사 인부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인부들을 위해 싼 재료인 시래기, 감자,돼지 뼈를 이용한 탕국을 만들어 제공한 것이 인기를 얻게 되어 1900년 한강철교 공사 막바지에 이른 노량진 근처에서 함바집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감자탕은 저렴한 돼지 등뼈와 감자, 우거지, 갈은 들깨, 깻잎, 파, 마늘 따위의 양념을 넣어 진하고 맵게 끓인 탕으로 감자 속속들이 등뼈 맛이 흠뻑 배어들어 깊고 구수한 맛을 낸다. 아침에 해장국으로 또는 더운 여름과 날씨가 쌀쌀해질 때 식사메뉴, 늦은 밤 야식, 술안주 등으로 이용한다.

감자탕의 유래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자웅을 겨루던 삼국시대에 돼지사육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현재의 전라도 지역에서 농사에 이용되는 귀한 '소' 대신 '돼지'를 잡아 그 뼈를 우려낸 국물에 각종 채소를 넣어 음식을 만들어 뼈가 약한 노약자나 환자들에게 먹게 한데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라도 지방에서 유래된 이 감자탕은 전국 각지로 전파된 한국 고유의 전통의 음식이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 감자탕은 저렴한 식재료와 충분한 칼로리, 구수한 뼈국물 맛이 우러나 서민들 중에서도 특히 부두 노동자들에게 환영 받던 알짜 영양식이다. 이 감자탕이 대중화된 지역은 인천항이 개항됨과 동시에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몰려와 다양한 음식문화를 갖추게 된 인천이다. 1899년 경인선 개통 공사에 많은 인력이 동원되면서 뼈 해장국과 감자탕이 인천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지금은 250만 인천시민이 모두가 감자탕 매니아라 할 정도로 한 집 건너 감자탕집이 있다.

그러나 이런 감자탕의 유래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의견들을 종합해보면 아무튼 감자탕은 노동자를 위한 음식으로서 전라도의 조리법을 원용하여 인천 지역에서 처음 발생하고 서울에서 발전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감자탕이 서민 음식이었다는 점은 확실하며 이와 관련하여 감자탕이 확실히 자리 잡게 된 장소가 인천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소위 물텀벙이라 불리우는 아구찜이 인천에서 기원한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자장면도 1905년 인천 차이나타운의 공화춘이 기원이라고 한다. 그리고 감자탕도 인천에서 성공한 음식이다.

이것을 두고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모여들었던 개항 당시의 인천에서 새로운 음식문화가 생겨났다고 간단히 말해도 되는 지는 의문이다. 전국의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서울에서 모이고 있었다. 외국인에 관한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개항을 인천에서 했다지만 외국인은 서울에도 많았다. 이렇게 드라마틱한 음식의 진화가 왜 인천을 기원으로 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은 이를 두고 『가난한 남자 독신 노동자의 증가』가 그 이유라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맘때는 더더욱 더, 독신 남자들이 요리를 해먹는 문화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괜찮은 과부하나 후리지 않는 이상은 남이 해주는 밥을 먹을 수밖에 없는데, 네댓 명이라면 하숙집 아줌마 밥을 얻어먹었겠지만, 대규모의 공사장 등이라면 결국 상업적인 외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외식이라는 것에 몇 가지의 전제가 있고 감자탕은 여기에 딱 들어맞는 메뉴가 된다.

1) 남자들끼리 먹는 것이니 술안주로 먹을 수 있어야 한다.

2) 노동자들의 음식이므로 열량이 높고 포만감이 들고 재료가 싸면서도 맛이 강해야 한다.

3) 값싼 음식이므로 한꺼번에 대량으로 조리할 수 있도록 손이 덜 가는 재료로 마구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어쨌거나 부두노동자들에게 환영받던 감자탕은 돼지등뼈에 단백질, 칼슘, 비타민 B1 등이 풍부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제는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찾게 되는 인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감자탕은 어린이들의 성장기 발육에 도움을 주고 남성들에겐 스태미너 음식이 되며 여성들에겐 저칼로리 다이어트 음식. 노인들에겐 노화방지 및 골다공증 예방 음식으로 사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