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Hansik)

한식은 아름답고, 맛있으며,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어려울 만큼 건강에 좋은 음식으로
여러가지 식품영양학적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식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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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등록일 : 2013.11.13
조회수 : 0
떡볶이

흰 떡가래에 쇠고기와 채소 등을 넣어 볶은 음식. 흰 떡가래(가래떡)는 삼국시대부터 먹어오던 우리 전통의 떡으로 지금은 방앗간에서 쉽게 뽑아내고 있지만, 옛날에는 멥쌀가루를 쪄서 안반 위에 놓고 떡메로 무수히 쳐 끈기 있게 만든 다음 길게 빚어 만들었다.

원래 떡볶이는 흰 가래떡을 4cm 정도 길이로 잘라 네 쪽을 내어 물에 담갔다가 건져 양념한 쇠고기, 미지근한 물에 충분히 씻어 건진 애호박오가리, 데친 숙주, 채 썬 표고버섯, 굵게 채 썬 양파, 나붓나붓하게 썬 당근, 미나리 등과 함께 볶고 이 위에 잣과 계란 지단을 고명으로 얹는 고급 음식이다. 이렇게 만든 떡볶이는 떡과 채소 그리고 쇠고기의 맛이 어우러져 좋은 맛을 낼 뿐만 아니라 영양가도 높은 궁중음식이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던 떡볶이가 노점상인들에 의해 많은 재료를 생략하고 떡도 밀가루로 만든 떡으로 바꾼 길거리 음식으로 재탄생하고 유행하게 된다. 특히 길거리 표 떡볶이는 여러 가지 재료가 어우러져 맛을 내는 대신 강한 고추장 양념을 바탕으로 자극적인 맛을 가지고 있으며, 정부에서 식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들여온 미국의 잉여밀가루를 이용해 만든 떡을 사용했기 때문에 학생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사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로 70년대 이후 크게 호응을 얻으며 유행 되었다. 1980년대에 이르러 중고등학교 앞 떡볶이 집은 DJ가 나와 음악을 틀어주는 새로운 또래 문화공간이 되기도 했다.

떡볶이의 유행과 함께 그 조리법은 좀 더 다양해져 고추장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춘장이나 카레가루, 케찹 등 외국 향신료들을 섞어 새롭고 독창적인 맛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70~8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현재 30~40대에게 여전히 추억의 먹을거리가 되고 있기에 이 떡볶이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도 꽤나 알려진 명물이 되었다.

신당동 떡볶이 골목에는 동대문 시장을 찾는 외국인들이 들르는 관광코스가 되기도 하였고, 중국의 음식소개 사이트에는 그들이 먹는 년가오(年糕 가래떡 모양)에 한국산 고추장을 버무려 떡볶이를 만드는 법이 소개되어 있기도 하다.

온 국민의 간식이라 불리는 떡볶이. 매콤하면서도 달콤한 떡볶이는 아무리 간식거리가 넘쳐난다고 하는 요즘이지만 저렴한 가격과 어린 시절 누구나 후후 불며 먹었던 추억으로 지금까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고 있다. 현대의 매운 떡볶이는 ‘며느리도 몰라~’라는 광고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마복림 할머니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

1953년, 3년 동안의 피난살이로 너나 할 것 없이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마복림 할머니는 집안의 귀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중국 음식점을 찾게 되었는데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맛있게 먹는 식구들을 보면서도 본인은 중국 요리에 쉽게 손을 댈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할머니는 그 중 가장 만만해 보이는 개업식 공짜 떡을 먹기로 생각하는데 떡을 집다가 친정아버지가 드시던 자장면 그릇에 떡을 빠뜨리게 되었다. 자장면 양념이 묻은 떡을 드시고 생각보다 맛이 좋아 고추장을 생각하게 되셨고 그날의 실수로 우리나라 간식 문화를 바꿔놓을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떡볶이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 것은 1970년대 이후이다. 신당동 지역에 밀집되어 있던 고추장 떡볶이 전문점이 특히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이 지역의 떡볶이집의 DJ들이 인기를 끌면서 부터이다. 특별한 여가생활을 즐길만한 곳이 없는 때 떡볶이집의 DJ들은 지금의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고 하는데 떡볶이집의 DJ가 라디오 방송에 소개되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부터 떡볶이가 관심을 끌게 된 것이다.

현재 신당동의 떡볶이 골목에는 떡볶이 점포 20여개가 밀집돼 있어, 어묵이나 만두, 삶은 달걀, 라면, 쫄면 등을 첨가해서 만든 즉석 떡볶이를 먹기 위해 몰리는 사람들로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국민의 대표 간식으로 자리 잡은 떡볶이는 그 후에도 계속 진화했다. 1970년대 밀가루 장려 운동으로 밀가루 떡으로 만들던 떡볶이가 1990년대 이후 쌀떡으로 바뀌고 최근에는 숫자모양의 떡, 칼라 떡, 채소나 치즈가 들어있는 떡 등이 개발돼 맛은 물론 눈까지 즐겁게 한다.

이런 떡볶이는 최근까지도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여 소스도 고추장뿐 아니라 카레, 크림소스, 짜장 등 다양화됐고 그저 어묵, 쫄면, 라면 정도가 아니라 최근에는 떡볶이 안에 넣는 내용물도 다양해져 해물을 잔뜩 넣은 해물떡볶이나 갈비를 넣은 갈비떡볶이가 인기를 끌고 있다. 요즘에는 경기가 어려워서인지 마약떡볶이, 눈물 떡볶이라고 불릴 만큼 일반제품보다 몇 배나 매운 제품들도 중독성 강한 매운 맛으로 고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또한 종이컵에 담아줘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컵 볶이, 떡을 튀겨 양념을 바른 떡꼬치, 김치전과 떡볶이ㆍ순대볶음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세트메뉴인 ‘김 떡순’ 등 다양한 메뉴들이 포장마차에 선보이며 고객들의 발길을 잡고 있다.

하지만 이 떡볶이의 원년이 1953년이라고 해서 서민적 전통이 된 것이 그 해는 아니다. 1960 년경의 신문기사에 등장하는 떡볶이는 간장양념 그대로의 궁중떡볶이의 모습이다. 1970년 경 신당동 떡볶이집에 DJ가 들어오고 라디오에 소개됨으로써 떡볶이가 비로소 크게 각광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까지의 떡볶이는 노점 형, 분식점 형 떡볶이가 아닌 신당동의 향토음식-_ 이었을 것이라고 판단이 된다. 고추장이 흥건한 현재의 떡볶이는 신당동 떡볶이가 조금 더 인스턴트 화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연대는 1960년대 후반 또는 1970년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고추장 범벅이 된 새빨간 음식의 대명사인 떡볶이는 1970년대 이전까지는 간장양념의 까만 음식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에는 아마도 고추장이 새빨갛게 번진 음식을 『한국인의 매운맛』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기 어려운 시대였을 것 같다. 그러나 떡볶이의 매운 맛은 진화를 거듭해 요즘에는 “마약 떡볶기”라 불릴 정도의 강렬한 맛을 선보이는 집도 생겨났다. 문제는 혀에 대기도 겁이 날 정도의 이 매운 맛은 중독성이 강해 한번 이 ‘마약’ 맛을 보면 도저히 다음에도 찾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한편 떡볶이의 굵기가 가래떡 사이즈에서 지금의 손가락 굵기 사이즈로 바뀌는 시점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가 없다. 여러 사람의 기억에 의존해보았을 때, 이것은 고추장 떡볶이의 유행과 비슷한 시점인 60년대 후반 내지는 70년대 초반 정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